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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고 높습니다” (사 55:8-13 / 2004.10.17)2007-03-21 04:59
작성자 Level 10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고 높습니다”
(사 55:8-13 / 2004.10.17)

  배 한 척이 항해 도중 파선했습니다. 극적으로 선원 한 명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나무를 모아 거의 한달 만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만들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에 들어갔다가 해질 무렵 다시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애써 지은 오두막집이 불 길속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좌절과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막막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쯤 갑자기 들린 인기척 소리에 깼습니다.

눈을 떠보니까 놀랍게도 배가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배 한 척이 도착해서 사람들이 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 섬 앞을 지나가다가 불빛을 보고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고 있구나’하고 이 섬으로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소중한 집이 불타는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 때문에 그는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때로는 속상합니다. 때로는 절망스럽습니다. 때로는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바꾸어서 되물어야 합니다. “이 일 속에, 이 상황 속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 어떤 하나님의 생각이 있을까?”하는 물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사람과 다릅니다.

먼저, 시작되는 말씀 8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사람과 어떻게 다른 지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나님의 생각은 가끔 우리의 생각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우리가 펼치고자 하는 계획을 활짝 피도록 도와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조절하는 편으로 작용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우리의 생각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꺽어 놓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안 맞을 때,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길이 다릅니다. 길은 계획, 목적, 가고자 하는 길, 하고자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내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 내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은 다릅니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가고 싶은 길도 하나님의 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안내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사람보다 높습니다.

9절을 보시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말씀합니다.

보통 무엇을 비교하면서 비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측량할 수 없이 높습니다.

요셉은 17세에 노예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요셉은 절망과 실패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야곱에게 이 사실은 충격이었고, 불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22년 후 기근 때에 요셉의 가족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높은 뜻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병에 걸리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지금 즉시 오셔야 된다>고 하는 소식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오빠와 함께 있으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생각은 어떠했습니까? 지금 곧장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슬픔에 잠겨 있지만 여러 날 더 있다가 가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은 이틀이나 더 지체하다가 돌아오셔서 나사로를 일으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높은 뜻이었습니다.

욥기 11:7-9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이렇게도 높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높은 생각과 길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계속되는 말씀 10-11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와 다르고 높다고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10,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아멘.

이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의 신실성입니다.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이 열매를 맺게 하고 양식을 주는 것처럼,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생각은 절대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자기 생각대로 하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가시밭길, 고통스러운 길, 십자가의 길과 같은 어려운 길을 통하여 우리를 자기 생각대로 다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헬렌켈러의 말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읽는 지혜를 발견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고통의 삶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의미있는 삶을 살았던 그녀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된 다음에 잠깐이나마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고 귀가 멀어져서 듣지 못한다면, 영적으로는 오히려 유익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눈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귀로 듣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이 헬렌켈러의 말과 상통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잠깐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산에 가면 계곡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경쾌하고 발랄한 개울물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무엇 때문에 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아슬아슬한 절벽과 무시무시한 바위, 그리고 오밀조밀한 돌멩이들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개울에서 돌멩이를 다 건져내고 날카로운 바위나 절벽을 다 깎아서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소리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을 가로막는 바위를 치우지 않으시는 겁니다. 높은 절벽을 그대로 두십니다. 마음이 아프십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서 가만히 보시는 겁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회복의 계획입니다. 12, 13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시작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백성에게 기쁨, 명예, 그리고 평안을 회복시켜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멸망할 것이며, 바벨론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당할 것이라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생각만해도 무시무시한 메시지 아닙니까? 불안했을 것입니다. 무서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계실 분입니까? 아니요(!)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으로 나아가고 평안히 인도를 받을 것이다... 어디에서입니까? 지금 서 있는 삶의 자리입니다. 고통과 슬픔, 근심과 관계의 단절, 불안과 불확실함의 그림자가 있는 암담한 땅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먼저 보고 계셨습니다. 모든 산들이 노래하는 미래입니다.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는 미래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가시나무와 질려, 찔레꽃이 자라던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잣나무와 화석류와 같은 기름진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풍성한, 그런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바뀌는 미래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기쁨과 평안 그리고 생명력을 회복되는 미래입니다.

예레미야 29:11은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아멘.

여러분, 이 회복의 약속,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 그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있는 삶의 현실이 고통과 슬픔, 근심과 관계의 단절, 불안과 불확실함의 그림자로 그늘져 있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 가시나무나 찔레꽃 같은 육체의 가시, 마음의 상처, 영혼의 연약함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측량할 수 없지만, 엄연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시고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나아가고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잣나무와 화석류 나무와 같은 생명력 넘치는 나무가 가득찰 것입니다. 육체가 생기를 얻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영혼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만난 현실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모순되기도 하고, 납득이 가는 일보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더 많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복음 증거를 위한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동기도 선한데, 정상적으로 로마까지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감옥에 갇혀야 했고, 죄목 없는 죄수의 몸으로 쇠고랑을 차고 로마로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고 나서야 그는 빌립보서 1:12에서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내가 당한 일이란 게 무엇입니까? 그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야에서 2년 동안 갇혀 지내는 그 파란을 겪으면서 로마까지 왔고, 감옥에서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당한 일, 이 많은 고통과 긴긴 시간, 이것은 잘못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유익했다, 이것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모순적이지만 그 사건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의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흔히 이럴 때에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뭘하고 계십니까? 아시기는 합니까? 왜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이것이 인간의 고뇌에 찬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엄청난 역사를 경륜하고 계시는 겁니다. 유명한 학자 존 벨러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한계상황이 하나님의 기회이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

우리가 <이젠 끝났다, 속수무책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새로운 기회를 만드십니다.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십니다.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륜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수정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내가 당하는 현실이 어떤 것이든, 절대로 버려진 현실이나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또다른 창조적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보다 높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다르고 높고 신실하신 생각과 그 속에 있는 길, 회복과 평안, 소망의 섭리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과 인내로, 마침내 웃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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