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5(주) 주일예배 본문 행 4:32-35 / 제목 세상 속의 빛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세계를 울린 형제 사랑) 짧은 영상 속에 비친 동생을 위한 형의 희생적 돌봄이 우리의 마음과 눈을 적십니다.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부모를 다 잃은 형, 자신도 죽어가면서도 겨우 살아 있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형의 눈물겨운 사랑의 마음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형제의 위대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 형제라는 힘은 이렇게 강합니다. 자신의 형제 자매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를 서로 묶을 수 있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다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세상의 희망은 사랑에 있습니다. 이 자신 보다 타인을 더 먼저 생각하고 주는 사랑의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발견하고 또 우리 자신이 그렇게 회복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놀라운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예수를 믿고 따르기를 작정한 사람들이 이전과 전혀 사른 새 삶을 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게다가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형편이 낳은 성도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 놓았기 때문이요, 사도들은 이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한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제까지만 해도 남이었던 이들이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서로를 깊은 관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나누는 가족, 형제자매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담과 하와가 죄 짖기 이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 없이 아담과 하와가 완전하고도 순수한 사랑의 관계로 맺혀져 있는 그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붙들어 주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당시에서는 물론이고, 우리 시대에서 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는 세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 순수한 사랑으로 돌보는 새로운 사회가 형성 된 것입니다. 필요하면 잉여 재산을 팔아서라도 연약한 자를 돌보는 강력한 사랑의 공동체가 이 세상에 시작 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들을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욕심과 이득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그리워하던 그 삶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말입니다. 세상과 다른 삶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의 빛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2.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 된 이기적이요 죄의 욕심을 좇아 살던 삶을 벗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그 깊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위로하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덧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그런 식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의도하신 진정한 인간,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고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새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3.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여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믿어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심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 모시고, 또 그렇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새 삶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심으로 이루고자 하신 궁극적 목적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자녀로 한 형제자매가 되게 하신 뜻도 분명합니다. 그것은 죄의 욕심과 정욕과 악함과 교만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능멸한 더러운 죄의 옷을 예수의 피로 정결케 하여 공감과 격려와 용서와 오래참음과 감사와 화목이라는 예수님의 옷을 입고 새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부르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예수의 옷을 입고 사는 새 사람으로 부르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 형제자매가 된 교회인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교회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5.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이 모습 속에서 예수로 말미암는 한 줄기 소망과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2천 년 전 초대 교회를 이루었던 그들도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죄인들이요 이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악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자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안에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의 길을 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능성의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초대교회 형제자매들처럼 우리도 이 사회에서 전혀 다른 삶으로 세상에 소망과 빛이 되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참으로 우리가 초대 교회 선배들의 그 믿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어 참 가족이요, 형제처럼 서로를 위하고, 품고, 끝까지 용서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랑의 길을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관계가 살고, 우리 자신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책에서 찰슨 콜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 용서, 그리고 화해는 참된 인생의 핵심이다. 이것들은 관계를 치유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도록 해주고 우리를 회복시켜준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생명이요, 치유요 회복이요, 평화입니다. 거룩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나 자신과 우리를 가장 고결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6. 만약 오염되지 않고 변색되지 않은 이 사랑이 우리 교회 안에 살아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초대 교회가 그 사회에 소망의 빛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 이 사회에 진정한 소망의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7.초대 교회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창조시의 그 형상, 곧 사랑의 형상을 다시 회복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예수께 있습니다. 주 예수 안에서 죄가 벗겨지고 새 사람이 되는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죄로 물들었던 마음이 벗겨지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 하실 때의 그 때 묻지 않는 형상이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8.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 생활을 막 시작한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심에도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임 당한 예수,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깊이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정말 이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신, 그러나 부활하신 나의 하나님, 나를 하나님의 자녀 되는 새 사람으로 부르시는 구원의 주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에 이르기를 구하십시오. 그 마음을 품고 예배 당을 찾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임하사 깨닫는 은혜와 믿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라는 도시의 세관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사는 곤란에도 처할 만큼 막강한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의 뒤에는 로마정부와 로마 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에게는 매국노요 죄인으로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취급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늘 갈등과 죄책감이 상존했습니다. 일을 해도 기쁘지 않고, 많은 돈을 벌었지만 괴로웠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동족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인생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삶으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여리고를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뒤늦게 나무까지 올라가 애를 씁니다. 세리장이 어린 아이 같이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는 저쪽에 오고 있는 예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 예수는 과연 나 같은 사람도 헤아려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나 같은 죄인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바라봅니다. 그 마음을 아신 예수께서 그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묵여야 하겠다” 누구나 다 싫어하고 외면하는 그를 예수님은 찾아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놀랍고 기쁜마음으로 급히 내려와서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십니다. 이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그 지역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예수가 죄인의 대명사와 지내려고 그 집에 들어갔다” 사실 그는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 구원 받아도 매국노 삭개오 만큼은 아니야 라고 할 만큼 그는 그렇게 큰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 울고 있는 영혼, 누구보다 새롭게 되기를 구하는 갈망을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삭개오에게 가셔서 그의 집에 가겠다고 하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을 인하여 삭개오는 그 마음이 새롭게 되어 과거의 죄를 다 털어 버리는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가 일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기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리라” 하셨습니다.(삼상16:7)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 예수를 깊이 아는 은혜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구하십시오. 깨어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일정한 고요한 시간을 잡아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십시오. 그 마음을 아시고 그 눈을 열어 예수의 살아 계심과 그 십자가 사랑과 성부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깨닫는 은혜, 진정한 인간으로 새 삶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함께 여기 이곳에서 세상에 소망의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됩시다. 둘째로 이미 새 삶으로 부름 받아 믿음의 길을 가는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그 사랑의 길을 향하여 도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형제자매 되게 하신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또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간까지 다 내어 주십시오. 필요하면 목숨까지 다 내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새 사람 되게 하셨습니까? 구원 받을 자격이라곤 억분의 일도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게다가 더러운 죄의 옷을 있고 있는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예수는 그 모든 비난 그 모든 모욕 그 모든 배신의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임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고 받을 영원한 죽음의 그 값을 예수님이 그렇게 선고 받고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다시 예수 앞에 성령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다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랑 없는 모습을 의례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주의 은혜를 덧입는 길을 가십시오. 그 중심을 보시고 아시는 주님께서 이전 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을 단을 거두리로다” 언약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께 나아갈 때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시 새롭게 은혜를 덧입을 때 우리 입에서는 찬송이 터지고, 우리의 말은 생명의 말로 흘러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쓸데없는 무익한 말을 삼가고, 감사와 기쁨과 선한 말로 서로를 살리는 말로 충만한 교회, 사랑의 말이 가득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