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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마지막 순간까지 붙잡아야 할 것이 있는가2018-10-2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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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주일예배

본문 사사기 7: 1-8

제목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아야 할 것이 있는가

 

어느 추운 날 새벽 세수를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그리곤 따뜻한 물이 나올 때 까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10여초가 지나 따뜻한 물이 나오지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물줄기에 대 보았습니다아직 찬물이었습니다몇 초를 더 기다렸습니다다시 손가락을 갖다 댔습니다여전히 찬물이었습니다이상하다 하고 수도 꼭지를 봤습니다그제서야 찬물이 나오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따뜻한 물을 튼다는 것이 찬물을 틀어 놓았던 것입니다그러니 따뜻한 물이 나올 턱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빠르게 한 생각이 휙 떠올랐습니다어쩌면 우리 인생이 이와 같지 않을까찬물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따뜻한 물을 기다리는 것 같이엉뚱한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정작 붙들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닐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믿음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또 여호수아와 함께 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던 사람들이 죽자 이들은 쓸데없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 예상 했던 평화행복은 사라지고 주변의 민족과 나라들에 의한 괴롭힘과 고통에 빠지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부름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 였습니다죄를 지은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도덕적으로 불의한 일을 한 것도 죄입니다그러나 이러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죄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입니다그렇다면 근본적인 죄는 무엇입니까자신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자기 필요한 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린 죄에서 인류와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택함 받은 민족입니다그렇기에 더욱더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야 했습니다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사는 혜택을 주신 것입니다강력한 군대의 힘경제력생산 가능한 많은 인구엄청나게 비축 된 식량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 보다 수천수만 배 더 강력한 힘곧 이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대신 지푸라기를 잡았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시기에 이들을 돌이킬 방법을 동원하셨습니다말로 해도 안 듣자 주변의 강대국을 동원하여 징계를 하신 것입니다그러면 그 징계의 혹독함에 하나님 앞에 비로소 부르짖습니다그러면 하나님은 사사들을 보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민족과 나라들을 구해 평화가 임하게 하십니다사사기의 전체 내용이 바로 이러한 내용들의 연속이요 반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7장의 배경도 이와 동일합니다. 7장의 배경이 되는 6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립니다이에 사해동남부 지역에 사는 미디안족속아말렉 사람을 동원하여 7년간이나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이스라엘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산에 구멍을 파고 산성을 쌓고 살아만 했습니다우기철인 10월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납니다그러면 이 세 족속이 몰려와 가축들 먹이 감으로 썼습니다추수 때인 이듬해 3-4월이 되면 추수한 곡식을 다 걷어 가버렸습니다또 이스라엘의 양나귀들도 닥치는대로 쓸어가 버렸습니다마치 쓰나미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삶의 토대를 휩쓸어 가듯 했습니다그러니 그 굶주림과 그 고통이 얼마가 심했겠습니까하나님을 버린 댓가는 이렇게 혹독했습니다.

 

결국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이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부르십니다처음에는 기드온이 주저 했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라는 말씀과(6:16), 불의 언약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그리고 이 때 미디안과 아말레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또 다시 이스라엘 북중부 지역이 약탈과 침탈로 유린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겨우 300명의 용사들로 미디안 연합군을 맞서 싸워 이기는 승리미디안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구원을 주십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고 있습니까?

 

첫째, ‘성경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모래와 같이 많은 미디안 연합군에 맞선 이스라엘 군대에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전략은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이에 기드온이 모든 32,000명의 병사들과 함께 하롯샘 근처에 진을 치고 미디안 연합군과 대치하고 막 일촉즉발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드온에게 말씀합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 전쟁의 승리 여부는 이미 결정이 나 있었습니다기드온으로 하여금 인 전쟁을 이기게 할 것이라 약속해주셨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하나님은 염려하십니다이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의 힘으로 되었다고 자랑하고도리어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걱정하신 것입니다하여 적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데도 이스라엘 군대숫자가 너무 많다 하십니다그리곤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게 하라 합니다하여 22,000명이 돌아갑니다만 명이 남았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많다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는 물가로 내려가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 자만 남기고 다 돌려보냅니다결국 9,700명은 돌아가고겨우 300명만 남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봐서 32,000명도 많은 것이 아닙니다. 12절 기록에 있듯이 적의 진영의 군대의 수와 그들이 사용할 낙타가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대군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게 했습니다그들은 특별히 훈련 된 특수부대도 아닙니다그저 물 마실 때 손으로 떠서 마신 것 외에는 다른 점이 없는 평범한 군인들입니다.

 

게다가 이 전쟁에서 사용한 주된 전략은 항아리 속에 숨긴 횃불과 나팔과 함성지르기 작전이었습니다. 3백 명을 3개조로 나뉘어 미디안 군대를 둘러싸고미디안 연합군의 병사들은 피곤하여 쿨쿨 자는 밤 10-2시 사이 나팔을 신호로 하여 동시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높이 들고 있는 힘을 다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기드온을 위하라(18)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20) 그런데 이 전략이 먹힙니다.

 

그 오밤중에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옵니다두려운 급습의 횃불이 사방에서 번쩍입니다동시에 수많은 군대의 함성과 나팔소리가 진동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당황되었겠습니까이 당황을 이용해서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연합군들이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게 합니다그러자 미디안 연합군은 칠 흙 같은 밤급습의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닥치는 대로 같은 편끼리 싸웁니다아비귀환의 장이 된 것입니다결국 기드온과 300용사가 미디안 연합군을 깨트리고 승리합니다상식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긴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믿고 의지 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셨듯이 우리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즉 이 대 우주와 그 속의 모든 만물과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사람까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그렇기에 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그 어떤 것들도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하늘과 땅곧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 아니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즉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자신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뜻입니다이 우주가 생기기전 즉 영원 전부터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계셨습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의 하나님이십니다만들어진 신우리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우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모든 것의 근원과 시작과 이유가 되시는 스스로 계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실로 형용하기 어려운 복입니다왜냐하면 택함 받았다는 것은 스스로 계시고 이 우주를 창조하신 무한한 지혜와 권세와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백성자녀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듯하나님의 것이 다 택함 받은 자의 것이 되는 복이 이스라엘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하나님을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버린 것입니다그래서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를 통해 다시금 이스라엘을 깨우칩니다. “나 여호와가 바로 너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신이다즉 스스로 계신자요이 모든 세계를 창조한 지혜와 권능과 목적이신 하나님이시다그러니 지푸라기를 버리고 나에게 돌아와 오직 나를 경외하고 나를 신뢰하라

 

결국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길 수 없는 전략을 통해 이기게 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심을 보고스스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분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약함을 통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그 지혜와 권능으로 살아가는 백성으로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다른 한편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이 계심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렇기에 이 예수 안에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인생은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그는 예수를 위하여 세상이 자랑하는 것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3:7-8). 예수 안에 세상 것과 비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치고 또 넘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의 일생을 주 예수께 맡깁니다주 예수를 붙들고하나님을 붙듭니다.

 

세상이 붙드는 부와 명예와 권력과 힘은 대단한 것 같이 보입니다그러나 다 지푸라기입니다다 내려놓고스스로 계시고 온 우주와 우리를 창조하신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예수 안에서 죽음을 깨트리고 생명을 주시는 진정한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을 붙드십시오성경의 하나님만이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월이 지나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버립니다그리곤 사람의 힘이방인의 신을 의지합니다죄의 길을 간 것입니다그러자 하나님은 미디안을 통해 징계를 하십니다그러나 징계가 직접적인 목적이 아닙니다그 징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참 목표 였습니다그렇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사랑의 매를 대십니다그러자 이스라엘이 드디어 버렸던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고통이 다가오자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입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고통에서 자유케 되는 구원을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을 방치 했을 것입니다하나님을 버리든 떠나든 고통을 당하던 버려두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방기 하지 않으셨습니다그들에게 사랑의 매로 찾아오셨고회개 할 때 필요한 사람을 세워 구원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특히 기드온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따뜻한 사랑의 아버지가 아들을 품어주고 세워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불렀을 때 기드온도 하나님께 서운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분이라면서 우리를 버려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느냐?”고 말입니다.(6:13)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는 가서 이 너희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불평하고 하나님을 못 미더워하는 기드온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며 주저합니다.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믿음 있고 확고한 뜻으로 기드온에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먼길 가는 아들의 길에 혹여 어떤 일이 있을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드온에게 위로하며 그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이 약속대로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사 그의 길을 지도하고 인도하고 붙들어 주십니다오직 여호와를 신뢰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용사로 세우십니다그리곤 그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십니다겨우 300용사로 이길 수 없는 미디안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기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함을 이렇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얼마나 사랑하면 자기를 버린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 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죄인들의 모든 죄 값을 대신 하여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에 처하게 할 수 있을까요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설명 할 수 있는 단어는 딱 하나입니다아무 조건 없이 주는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저는 이 사랑을 묵상 할 때 마다 감동과 새 힘을 얻습니다제가 죄인임에도 버리지 않고끝없는 사랑으로 저를 품어 다 용서하여주시고그 한없는 사랑으로 항상 품어주심이 예수의 십자가 속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갈수록 이 사랑이 보다 깊고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저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압니다그리고 그 사랑의 하나님을 압니다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주시는 그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십니다이 사랑으로 저를 뜨겁게 품고 붙드시고 계십니다제가 눈을 깜박거리는 때도일이 꼬이는 것 같은 그 때도괴로운 일이 다가와 있을 때도죽음이 앞에 와 있어도 하나님은 이 사랑으로 저를 붙들고 계십니다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이 사랑 때문에 사람이세상이높은 권력이많은 부가 두렵지 않고 부럽지 않습니다하나님의 그 사랑이 저를 자유하게 합니다.

저는 이렇게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다음 말씀에서 더욱 확신합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은 이렇게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셨습니다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더 이상 의심하려야 할 수 없는 증거로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그 사랑으로 우리를 아들 같이딸 같이 붙들고 계십니다그 사랑으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그 사랑으로 우리를 늘 품어주십니다그 사랑으로 우리의 상처연약함부족함실수좌절감못 배움외로움배신의 아픔으로 인해 홀로 깊고 어두운 방에 움크리고 있는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사랑한다아들아사랑한다 내 딸아

 

누가 이 세상에서 허물 많고 자격 없는 상처뿐인 나를 아무 조건 없이 그 어떤 수치감과 책망 없이 그대로 품고 안아 줄 수 있고다 이해한다 하고 다 용서하고 싸매어 낳게 하며 끝까지 품어 줄수 있을까요오직 예수이 아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평생토록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가 분명해집니다그것은 조건 없이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시는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이 사랑의 하나님을 신뢰하고이 하나님께 성도님들의 남은 인생을 맡기십시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구원과 자유를 얻으며, 진정한 내가 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스스로 계시고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권세와 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그리고 아들을 주시기까지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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