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사랑, 화목, 교제) 본문: 요 17:11, 시편 133: 1-3 엡4: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잘 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사랑으로 화목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필수 조건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웨슬리 목사는 개인적으로 성경 보는 것과, 금식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듯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은혜를 체험함을 강조했습니다. 마18; 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의 약속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성도의 교제로 주님께서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교제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인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 교제는 사랑 연습이며 또한 화목훈련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좋아하는 것은 일반인에서도 하는 것이니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세리도 이 같지 아니하느냐?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린 원수도 아닌데 어떻게 합니까? 어느 모임에 가든지 개성이 뚜렷하여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는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안 만나면 그만 이고 안 나가면 되지만,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러면 안 됩니다. 미운 놈 떡 한 개 더 주라는 말도 있고,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바로 나를 축복하시기 위한 축복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철이 철을 연마하듯이 인격과 성품을 연단하시려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신앙을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만 못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를 뿐이라고요. 오히려 반대로 그 역시 나를 그렇게 힘들게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역시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 훈련 대상이며 화목의대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래야 합니다. 나와 안 맞거나 못하다고 해서 상관 안 하거나 사랑과 화목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형제요 자매임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자신의 구원 문제와 밀접하다는 것입니다. 요한1서 3:14-15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와 같이 한 사람하고 화목하며 사랑하며 지내는 것은 개인 구원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것은 계명이요 명령이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의 사랑하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른다고 하십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의 방법(내 맘에 들면 하고 안 들면 안 해도 되는 것)과 다르게 반듯이 해야 하는 일이 화목이고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기도 가운데 보면 (요17: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형제와 자매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 시편 133편의 말씀처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바로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서로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형제와 자매로 생각하며 연합하여 동거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때로는 훈련장이며 도장이기도 합니다. 태권도 훈련장에서 보면 서로 대련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때리기도 맞기도 하면서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합니다.그것은 미워서가 아니고 연단하고 훈련하는 것이기에 오해가 없고 문제없이 성숙하듯이 교회는 사랑의 훈련 도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밉습니까? 떡 하나 더 주십시오. 원수 같습니까? 더 사랑해 주십시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는 찬송가 속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신경의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 “거룩한 공회”는 곧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可視的)인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지상과 천상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된 신자들의 불가시적(不可視的) 교회를 믿는다는 뜻임으로,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과의 사귐이자 성도 간의 사귐으로, 죽음에 의해 끊어지지 아니하고, 천국까지 이어짐으로, 이 ‘교제’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영원한 영적 축복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신앙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나의 신앙과 생활이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해야 합니다. 히 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성도는 본래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엡 4:3-5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고전 12:13에도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7:11에 의하면 주님은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솝 우화 중에 네 마리의 황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함께 가고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우며 쉬는 친한 황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힘을 합하여 대처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소를 잡아먹으려는 사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황소와 일대 일 대결은 자신 있었지만 한 번에 네 마리는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기회를 엿보다가 그 중 약간 뒤쳐진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다른 소들이 그의 흉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자는 또 다른 소에게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소들은 서로를 불신하다가 마침내 그들 사이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사자는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다 잡아 먹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교훈합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그리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마 7:12).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황금 율법입니다. 고후 5:18-19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우리의 책임이며 하나님은 화목 잘하는 사람을 천국의 큰 일꾼으로 쓰십니다. 그리고 화목을 잘해야 복을 받습니다. 욥기 22:21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주님을 본 받아 사랑해야 합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화목하려면 관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 좋은 환경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이삭도 평화를 위해 블레셋 사람에게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잘 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