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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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생각하라” (히 12:1-3)2007-03-21 15:52
작성자 Level 10
2007년 1월 28일 주일설교

“생각하라”(히 12:1-3)

인간을 학술적으로 말할 때,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이 말은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호모 에렉투스, 이것은 두 발로 서서 걸어다니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또, 호모 파메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사람의 사람된 높은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 거기에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인간이라면 그건 동물일 뿐입니다. 생각하는 능력, 기능,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본질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각 자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의 기능인 이성, 그 이성이 건강하냐 병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 자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이성이, 생각이 병들면 거기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거기다 의지해가지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마는, 생각이 다시 태어나지 못한 인간이 아무리 공부하면 뭐합니까?

우리가 다 압니다. 온나라를 흔드는 사람들, 가만히 보면, 공부는 많이 했는지 모르지만, 생각이 거듭나지 못했어요. 사람을 속이는 쪽으로, 남을 죽이고 올라서는 쪽으로, 파괴하고 얻는 쪽으로 생각이 돌아가니까,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잘 생각해야겠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깊이 생각해보세요. 공부가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지, 남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나도 죽이는 것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건강한 생각, 건강한 이성,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생각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생케 하기 위하여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생각하라 - 마치 운동선수가 푯대를 향해 달리는 것처럼, 생각의 초점을 예수께 맞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나를 보고 세상을 봐서는 세상을 모릅니다. 나를 보고 예수를 봐도 예수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를 보고 나를 봐야 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옵니다. 나를 보고 아버지를 보면 부끄럽고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고 나를 보니 세상이 다릅니다. 그 기뻐하는 아버지, 정신없이 기뻐하는 그 아버지 얼굴을 보고 나를 보니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이제 복잡한 과거, 생각할 것 없습니다. 다시 기억할 것 없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나를 봅니다. 예수를 보고 나를 보세요. 내가 나를 생각하는 자아상이 교정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까? 아무리 나를 보고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를 보고 나를 보세요. 그분은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에요. 내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사람이에요. 나를 하나님의 자녀 만드시려고 그분이 돌아가신 거에요. 예수를 보고 나를 보니,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에요. 너무 혹사시키지 마세요. 학대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아무렇게 대충 살다가 떠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잘 가꿔주세요. 잘 안아주세요. 잘 쉬세요. 잘 드세요. 내가 소중하니까요.

오늘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는 능력이 많습니다. 지혜도 있습니다. 기회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십자가를 안지실 수도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 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침묵하고 서 계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 그를 생각하면 그 순간 세상에 억울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참지 못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 분에게 우리 생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말씀합니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죄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고 나를 사랑하셨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한두 번입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오래오래 참아주셨습니다. 무던히도 참아주셔서 오늘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곧 믿음입니다. 나를 믿어주셨습니다. 사랑이란 참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불의를 참아주셨습니다. 사랑이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너무나 오래오래, 내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주셨습니다. 사랑이란 자기희생입니다. 나 대신, 내가 죽어야 할 대신 그가 죽으시고, 내가 고난당해야 될 것을 그가 당하시고, 내가 저주받아야 할 것을 그가 받으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소중히 여기셔서 내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많은 은사를 주셔서 오늘도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그분을 생각하십시다. 그분을 바라보십시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내 인생을 책임지고 나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저 미래를 바라보십시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생각하고, 그리하는 동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생각이 다시 태어나고야 새로운 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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