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화) 송구영신예배 본문 에스겔 37:1-10 제목 말씀에 능력이 있다. 목적 말씀에 사로잡히는 성도, 말씀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 말씀의 생수를 흘러 넘치게 하는 교회의 꿈을 꾸고 도전하게 하기 위해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스라엘이 BC 605년, 597 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 침공으로 유린당하고 망합니다. 이 때 다니엘과 세친구가 1차 포로, 에스겔과 1만명이 2차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때 에스겔은 18세였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간지 6여년째부터 선지자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환상을 보고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 이 에스겔 예언서입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인해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전 파괴되었다는 비극적인 절망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당시의 비극을 역대하기자는 36:17,21-2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이 여기지 아니하였으며…칼에서 살아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폐허처럼 된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이 절망, 나라가 망한 절망을 오늘 본문에서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는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가 무엇입니가? 망한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인 것입니다. 왜 하필 마른 뼈로 표현했을까요? 인간의 눈으로, 상식적인 눈으로 볼 때 다시 일어날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없어지는 것 외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른 뼈들을 보여주시면서 묻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에 자신 없었던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답을 합니다. 그것이 살지 여부는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라” 뼈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선포하라고 합니까? “너희 마른 뼈들아 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말씀을 들어라. 죽어 말라 비틀어진 마른 뼈들이 살아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에 에스겔이 7절 이하에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뼈들을 향하여 선포합니다.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말씀이 선포되자 죽어 말라 비틀어지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뼈들이 조합이 됩니다. 힘줄이 붙습니다. 살이 붙고 피부가 돋아납니다. 그러나 아직 생기가 없습니다. 여전이 죽은 몸처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 때 다시 선포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러자 몸들에게 생기가 들어가고 살아납니다. 그러자 일어서는데 극히 큰 군대로 일어섭니다. 죽은 뼈들이 군대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예언은 절망 중에 있는 자들, 곧 바벨론이라는 무덤속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서 이스라엘로 돌아 갈 것이요, 이스라엘이 다시 극히 큰 군대와 같이 회복될 것임을 말씀하는 언약적 예언입니다. 즉 하나님이 택한 그 백성들에겐 절망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망에서 자유케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죽어 말라 비틀어진 뼈들조차 살게 하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1)하나님의 권능과 누구도 꺽을 수 없는 강한 의지에서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전인격을 걸고 반드시 그 대로 하겠다는 하나님의 불굴의 의지가 담긴 언약입니다. 그래서 한 번 하신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2)게다가 그 말씀을 시행하실 때는 하나님의 권능, 즉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죽음조차 깨트리고 다시 살게 하는 그 권능으로 행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볼 때는 문자에 불과하지만 그 말씀 속에는 그 말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읽는 자, 듣는 자, 먹는 자를 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른 뼈와 같은 사람, 마른 뼈와 같은 교회, 마른 뼈와 같은 도시와 나라가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한번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다.” 아멘! ”따라서 이 시대의 희망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 2020년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첫째 말씀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죽은 자들이 사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생명의 길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합니다. 오늘 날에는 우랴늄은 없어서 안 될 물질입니다. 핵폭탄도 만들지만 이것으로 암을 고칩니다. 전기를 만듭니다. 얼마나 요긴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나온 미국 사전은 우랴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쓸모 없는 희고 무거운 금속” 그 가치를 모를 때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외면합니다. 마찬 가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는 생명의 능력을 몰라서, 혹은 믿지 못하여 외면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도다” 성경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먹지 않는 것은 망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실업가로 체신부 장관을 지낸 존 워너 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불립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으로 정확한 경영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해서 그가 투자하는 것은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어느 날 신문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열 두 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권을 샀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투자였어요. 왜냐하면 이 성경이 오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9:5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 것들 때문에 살게 하심이니이다”(시119:93)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글입니다. 그러나 말씀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말씀하실 줄 믿고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묵상할 때 그 말씀이 나를, 자녀, 가정을, 사업을 살리는 것입니다. 말씀속으로 들어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2020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죽더라도 성경 한절을 읽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매일 말씀을 펼치십시요. 그러면 삽니다. 둘째, 말씀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이 오늘 말씀을 선포할 때가 불과 30세가 되었을까 말 때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선포하는 에스겔을 통하여 마른 뼈들이 붇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뼈들이 살아나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될 때 죽은 자가 살아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키위 교회들도 점점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늙어서 힘을 잃어서일까요? 성도들이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이요, 또 먹을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점 쇠약 해져 마른 뼈 같이 비틀어져 가는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 생명의 능력이 넘쳐나며 영혼이 살아는 역사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 길은 이 강단에서 성도의 심령을 찔러 쪼개어 새롭게 하는 말씀이 흘러 넘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우선 말씀듣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님께 구하십시요. 예수님께서 친히 복음을 전할 때도 은혜를 못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은 살아 있는데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인격적인 하나님은 막무가네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듣고자 겸손히 무릎 꿇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존경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이 박윤선목사입니다. 이분에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 중 하 사람을 박목사님이 가정 예배 강사로 초청을 하였습니다. 그 때 박윤선목사는 자기 집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자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십시요. 우리가 듣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교수라 해도, 아무리 그 명예가 드높아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어린 아이 같이 듣고자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제자의 말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무리 못난 목사 같이 보여도 예배의 자리에서 임할 때,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임할 때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릎을 꿇는 자세로 들으십시요. 그런 마음으로 듣는지 그렇지 않은 지는 하나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어린 아이 같이 듣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역사 하사 살릴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 교회가 죽고 사는 것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증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교회의 생존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의 책임, 목회자의 책임이 실로 막중하고 막대합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성령충만하여 말씀을 증거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가 성도님들 앞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제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 그리고 꿈을 주십니다. “말씀의 능력이 교회 넘치게 하라” 저는 이 뜻을 이루기 위해 2020년 오직 성령 충만, 오직 말씀충만의 모습으로 섬기고자 있는 힘을 다하고, 무엇보다 철저히 성령의 은혜, 말씀의 은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죽은 구약교회가 살아난 것처럼, 부족한 저이지만 성령을 좇아 하나님께서 대언하라 하신 말씀을 선포할 때 듣는 자를 하나님께서 살릴 줄 믿습니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이 교회가 다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오니 전심으로 기도해 주십시요 “우리 교회가 말씀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 말씀 앞에 어린 아이 같이 무릎 꿇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요.”하고 기도해 주십시요. 셋째, 말씀을 해밀턴과 열방에 흘러 넘치게 하는 교회가 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건물도 중요하고, 시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성령과 성경입니다. 특히 듣는 자를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능력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해밀턴의 유유히 흐르는 와이카토 강은 저 타우포 호수에서부터 흘러나와 오클랜드 앞까지 흘러가며 대지를 적시고, 생명의 물을 공급합니다. 물이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생수가 흘러 세상을 적실 때 세상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왜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까? 단순히 큰 교회 되기 위해, 교회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저 어둔 땅에 들려 질 때 그 땅을 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땅의 어둠을 물리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이 시작되는 것은 저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능력도 아닙니다. 말씀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가 왕성했다가 지는 해처럼 시들해져 가는 이 땅에 뭔 새로운 일이 일어날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마를 뼈 같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존재를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으로 죽음을 깨트리고 살리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살아날 때, 산 말씀이 흘러 넘칠 때 그 말씀이 들어가고 들려지는 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절망과 모든 염려를 몰아내고 다시 살리는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주 앞에 왜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는 그 권능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소망을 주시고, 진정한 평안을 주시고, 갈 길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빛이 들어갈 때 우리 안과 세상의 어둠은 쪼개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교회가 생명의 말씀으로 대지를 흘러 적시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하고 꿈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되기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마른 뼈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고, 흘러 넘치게 할 때 그 곳에 절망과 죄와 악을 깨트리고 다시 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생명의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에 흘러 넘치게 하여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는 주님의 꿈을 품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로 2020년을 주님께 드리십시요.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020년 말씀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 말씀의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 능력의 말씀을 흘러 넘치게 하는 꿈을 안고 함께 기도하고 도전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