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배와 말씀

PRESBYERIAN CHURCH

금주의 말씀

제목"현재에서 미래를 사는 사람" (빌 3:12-16)2007-03-21 15:25
작성자 Level 10
"현재에서 미래를 사는 사람" (빌 3:12-16)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늘 과거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과거지향적인 사람, 그리고 또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미래지향적인 사람,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젊다고 할지라도 꿈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이 사람의 삶은 과거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아직도 붙들고 있는 비젼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 사람의 삶은 미래지향적인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어보면, 바울의 마음 속에 벅찬 미래가 아직도 바울을 붙들고, 따라서 바울의 발은 어두운 현실, 현재 가운데 서 있지만, 그의 생애는 생동하는 미래를 향해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 하나님이 그래서 바울을 쓰셨구나. 단신이지만 큰 사람 바울을 통해서 정말 그 시대를 바꾸는 놀라운 일을 하셨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자... 현재 속에서 미래를 살았던 사람, 이 바울의 미래지향적인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아니, 우리가 더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오늘 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과 내가, 정말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인생의 한 순간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바울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다운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제자, 정말 예수를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목표에는 아직도 못 미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2절에 보시면,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바울이 아직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는 목표,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자기 삶을 성찰하면서 느낀, 바울이 자기의 인격과 사역에 대하여 가졌던, 이 심정을 가리켜서 저는 창조적인 불만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창조적인 불만, 왜 중요할까요?
이 창조적인 불만이 있을 때, 새로운 발명, 새로운 연구, 새로운 사역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청소년 사역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데이빗 윌크선 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와 깡패>라는 제목의 책으로 그의 전기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성공적으로 목회하던 목사였습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그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프로그램은 뉴욕의 한 복판에서 마약에 빠지고, 폭력과 쾌락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은 아닙니다. 저 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 기도는 그의 삶에 거룩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는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교회를 사임하고, 뉴욕의 다운타운, 그 험악한 도시 한 복판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청소년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의 사역은 미국 정부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미국의 청소년을 돕기 위한 대대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그래서 청소년들의 인생을 바꾸는 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이란 무엇일까요? ...
“이것이 전부가 아닐텐데... 이래서는 안되는데...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이런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불만을 위한 불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오히려 공동체에 어두운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불만은 달라요. 그것은 창조적인 대안을 찾게 합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역사를 바꾸는 건강한 힘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공동체가 정말 미래 지향적인, 앞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과거를 잊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녁을 향해 쏘아버린 화살입니다. 둘째는 급하게 내뱉은 말입니다. 셋째는 황금같은 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님은 이런 멋진 말씀을 해주십니다.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춰라>.

예,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과거의 일에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고백하지 않습니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뒤에 무엇이 있길래요? 실수가 있었습니다. 성공이 있었습니다. 실패도 있었습니다. 배울만큼 배운 지식인이었고, 올라갈만큼 올라간 명성이 있었습니다. 그 지식, 그 명성 믿다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아덴에서는 철학자들에게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 잊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숙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잘못했던 일들, 잘못된 습관들, 즐겼던 일들을 깨끗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성공했던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생각할수록 기분은 좋지만, 그것이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오히려 교만의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누구나 체험하는 일입니다마는 우리는 보통 기억이 안 나서 괴로울 때보다는 잊어버려야 할 것을 못 잊어서 괴로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악몽같은 추억, 부끄러운 기억, 나빴던 관계, 실수했던 일, 이런 것을 빨리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잊어버려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으니까, 좀처럼 가슴 펴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 붙들려 있지 말자는 말입니다.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경험에 지배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간혹 보면,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올라옵니다. 그 화가 올라옵니다.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니까, 현재는 더 이상 현재가 아닙니다. 과거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위로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행하실, 이제 나타내실 새 일, 미래를 바라보라고 도전하십니다.

그러나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사는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므로 과거가 현재의 나를 움직이고 있다면, 그 어둠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더 적극적인 고백을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우리가 뒤에 있는 것을 잊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명한 아프리카의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 그가 노년에 잠시 안식년을 얻어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누군가가 리빙스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리빙스톤 박사님, 이제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이제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그 때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는 앞을 향해서 자기의 삶을 계속 던지고자 했던 것입니다. 역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또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자, 오늘 본문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예, 푯대를 향해서, 골, 목표를 향해서, 바울은 그가 예수를 만난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어떤 푯대를 설정했습니다.

그 푯대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입니다. 부름! 이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바울은 그 소명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이 그 부르심 앞에 순종하고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누릴 수 있는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죄사함 받았다는 것, 그것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왜 구원받았을까요?

그것은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 불러주신 그 일을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구원에 근거한 그리고 소명에 근거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오르키니스라는 분의 <소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이 책에서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초프가의 형제들의 얘기를 하면서 한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무엇인가 분명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을 모른다면 자신이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수용하지 못할뿐더러 종내는 그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살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그것, 우리는 이것을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보편적인 소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편적 소명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다시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에게 주신 달란트, 그리고 은사, 재능, 독특한 삶의 조건을 통해서 나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분명하고도 확고한 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골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인생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왜 우리의 삶이 앞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할까요? 목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 인생이 정말 미래지향적인 삶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오늘 우리 모두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세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확고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4. 미래를 향한 집중적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생을 힘없이 맥 빠지게 종결 짓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그 목표에 헌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올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실까요? 1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오직 한 일. 이 단어를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한 일. One thing I do ! 목표 앞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아닙니까?

그리고 14절에서 이제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어떻게 한다구요? 좇아가노라, 좇아가노라! 영어로는 Press on! 아주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표현해주는 단어입니다.

본래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이럴 경우에 쓰입니다. 굶주린 사냥개가, 오랫동안 굶주렸어요. 그러다가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그 먹이에 자기의 모든 시선,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아마 질주할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림을 그려보세요. 바울은 자기 인생의 소명, 그 소명에 근거한 목표설정을 한 다음에, 내가 그 목표를 향하여 뭐라구요? 좇아가노라! 이제 그는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시련 없이 목표에 도달한 인생들은 없습니다.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창조적인 모험심과 돌파의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계속해서 집중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의 고백 속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절입니다.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내 현재의 자리를 점검한 다음에 그 목표를 향해서 그대로 행할 것이다, 이제는 계속해서 달려갈 것이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 이런 목표를 앞에 놓고 계속해서 집중하고, 헌신하는 모습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습인 것을 아십니까?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해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마는,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때>라는 단어를 가지고 증거해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때>를 의식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그 날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입니까?
십자가의 때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드림으로써,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 그것이 그분의 소명이 아니었습니까? 그분의 목표가 아니었습니까?

그 소명, 그 목표를 바라보면서 뚜벅뚜벅 십자가를 향해서 걸어가신 생애, 어떤 시련이 있어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람들을 구원했던 그 놀라운 인생,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아니었습니까?

여러분, 그 십자가의 피흘리심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그가 부활하심으로 살아계신 주님이 되셔서 오늘 나와 여러분의 생애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좇아가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이제 주 안에서 주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그 목표,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그 소명을 설정하셨다면, 우리도 그 목표를 향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내 생애를 던지는 집중적인 헌신으로,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덧 12월, 2004년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뿐입니다. 잊으십시오.
대신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에 집중적으로 헌신할 때, 우리는 현재에 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과 행복의 미래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현재에 살지만, 미래를 사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현재에 대한 창조적인 불만을 가지고서 과거를 잊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미래를 바라볼 때, 주님이 부르신 그 소명, 나를 살게 하는 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 목표에 집중하고 헌신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