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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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믿음 5(출17:8-16)2010-09-09 12:37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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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크라이스처치에 7.4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오직 한 사람만이 심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 행운이고, 축복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심하게 다친 한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만약 이 사람이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다면 얼마나 실망할까요? 이 분의 앞으로의 인생여정은 이 실망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픔과 실망, 곧 자신 인생에 대한 회의의 절망감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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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처한 연약한 현실입니다.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짓누르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선하게 사용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귀는 이것을 덫으로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더 깊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합니다. 더 깊이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게 하고 우울하게 합니다. 미래를 어둠과 불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게 만듭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믿어봤자 별거 없어’라는 말이 나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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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가지 사단의 교묘한 전략은 신앙생활을 말 그대로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감동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어떤 경건의 능력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영적인 성장도 없습니다. 그냥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힘을 잃어버린 타락한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의 문제는 하나님을 무기력한 하나님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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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이러한 마귀의 시험과 유혹, 곧 인생의 고통을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계획으로 바꾸어 나가며 승리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요셉처럼 인생의 절망과 비참한 처한 자신의 상황을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계획으로 이끌어 나갈까요?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야곱 같은 불의 한 인생조차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붙들리는 사람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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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같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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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럼 성경은 고통의 문제를 믿음으로 대한 사람들이 승리의 길을 걸어갔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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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본문도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에서 구원을 받은 후,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시나이 반도 상단 신 광야에서 거주하는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평안 여정이 아니라 목숨을 잃고 전쟁을 해야 하는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시 새로운 문제가 일어났고,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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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싸울 만한 사람을 택하여 아말렉의 위협을 물리치게 하라고 합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사람을 뽑아 아말렉과 싸웁니다. 하지만 이 때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갑니다. 아론과 훌도 같이 올라갑니다. 신기한 것은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함께 오른 아론과 홀이 돌을 가져다가 놓고, 그 위에 모세를 앉게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론은 훌이 모세 양편에 서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립니다. 해가질 때 까지 아론과 홀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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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14)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날의 승리를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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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먼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해있고, 이에 여호수아를 내세워 아말렉과 싸우러 보냈을 때, 한 방에 시원하게 이기게 하시지 않고,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피곤해서 내리면 지고, 또 올리면 이기고, 그러다 또 피곤하여 내리면 지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게 하셨을까요?’‘왜 그렇게 하셨을까요?’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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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의 기적 사건을 통해서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따를 참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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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모세는 하나님 보내신 우리의 인도자구나’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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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 들어가 한 3일 물을 못 먹지 못하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3일이나 물을 못 마셨으니 얼마나 갈증이 심하였겠습니까? 게다가 물을 마침내 발견하기는 했는데, 물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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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마른데 물을 앞에 두고 못 마시니 감정에 극에 달하여 또 다시 그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모세가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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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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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안 되어서 백성들이 또 불만을 터뜨리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시원치 않자, 차라리 애굽에서 죽는 것이 낳을 뻔 했다고 하지 못할 말을 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만나를 아침 마다 내려 주셔서 먹게 하고, 저녁에 메추라기를 먹게 잡아서 먹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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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두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앞에 전개되는 고통을 늘 원망과 불평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모세의 뼈와 마음을 상하게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요 불신임을 알 지 못한 채. 그 큰 홍해의 사건을 보고도, 그 사건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이스라엘 백성은 늘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문제를 대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시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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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손을 들면 기기고, 손을 내리면 지는 상황을 반복하게 하여 한 가지를 깨닫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여호수아가 용맹한 사람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울지라도, 승리의 힘은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즉,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이 승리의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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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장차 군대의 최신 무기나, 상대방을 앞도 하는 군대의 숫자나, 유리한 상황이나, 자신들의 기묘한 전략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백성,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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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어떤 광대한 신전을 지어놓고 모셔지는 신일지라도과 또 그 신의 이름으로 나오는 제 아무리 강력한 군대일지라도, 세상 모두가 우러러 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초라한 이스라엘로 이기게 함을 통해 세상의 헛된 것과 거짓된 권세들 깨트리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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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정권의 힘, 나라의 힘, 군대의 힘, 돈의 힘, 군중의 힘, 여론의 힘, 유행의 힘, 광대한 신전과 우상의 힘, 그리고 절망의 권세, 거짓의 권세, 교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왜? 언제나 사람이 만든 이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을 갈아먹고, 주눅 들게 하고,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권세 앞에 주저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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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왜곡하고 헛된 것에 인생을 허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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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이기는 이 반복된 현상을 통해, 나를 억압하고 절망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서 결과적으로 나를 망하게 하는 권세들을 이길 수 있는 길,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나 자신도, 내가 가진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슴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라 하신 이유입니다.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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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단을 쌓고 그 단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 곧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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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절망케 하고 고통으로 좌절케 하는 권세들을 이기는 길은, 세상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우상 즉, 일류대학, 최고의 실력, 막강한 권력, 여론의 힘, 나를 인정해주는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우상처럼 높이 여겨지는 세상의 높은 것 들은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 패하고 영영히 없어질 것이 된 아말렉이 같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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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이야기(다리오왕,bc522-486, 전국총리, 시기자들과 30일 조서-사자굴,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며 감사)가 있습니다. 사자 굴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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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하였음 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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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하던 자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참소한 자들과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자 굴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트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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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힘은 얼른 보기에 대단하고 넘어 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은 마치 발람에 날려가는 검불이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믿음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장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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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뢰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실재와 능력을 알고 증거 할 수 있고, 그 증거를 통해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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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 졌어도 살아나온 모습을 본 다리오 왕은 전국에 조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단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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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불행스럽게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요, 하나님을 무능한 존재로 증거 하는 자의 사단의 편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생명의 길, 세상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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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남는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손에 잡힌 자들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게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에 처형 되었지만 다시 부활하심을 통해 영원한 것, 참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세상의 다른 권세가 아님을 분명히 증거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은 거짓된 권세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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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예수님께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이는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이 기다릴 것입니다. 미련한자는 천국이 없다하나,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세계를 봅니다. 그리고 참되 권세, 생명을 살리는 참된 권세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자기를 포기할 때, 세상의 헛된 권세들을 포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능력으로 세상의 헛된 것을 이기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죽으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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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헤밀턴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자부심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를 허물려고 하는 온갖 마귀의 계략, 곧 부정적인 사고와 믿음 없는 눈, 미래에 대한 믿음 없는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의 근본적인 뿌리는 ‘우리, 혹은 나’의 능력, 위상,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헛된 것을 자랑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믿음 없이 낙심하고 소망을 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능력을 보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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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 교회가 성경의 교회와 같이 진정으로 섬기는 행복이 우리의 모습이 되고, 하나님 성품을 따라 사는 새로운 사회로서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 장성한 믿음의 사람을 세워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교회가 되는 길은 우리 교회가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오직 주의 은혜로 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교회로 세워주소서 하고 간절히 그 은혜를 구해야 할 뿐입니다. 처음에 교회를 세우고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같이 주의 은혜를 순전히 사모하는 영혼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강팍한 우리 마음 위에 주의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깨어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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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참된 승리는 나의 것, 세사의 것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너는 나, 곧 너희 하나님을 의지하라. 너의 힘, 너의 능력, 세상의 우상, 곧 세상이 대단하게 여기는 돈의 힘, 숫자의 힘, 지식의 힘, 과학의 힘, 혹은 너의 무기력함과 절망이 아니라, 능력과 승리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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