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깨어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나는 연약한 여자 였습니다. 그러나나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에게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을 낳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후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가 세워지게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깨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헤밀턴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배하는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한나의 모습을 통해 십자가의 꿈을 이룰 자들의 기도가 어떠해야 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주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한나가 아기를 못 갖는 것도 서러운데 구박을 받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속이 타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알아 줄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여자가 애도 못 난다고 구박을 하니 더 괴로운 일이지요. 그래서 여자로서 한나는 그 인생이 초라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로서의 구실을 못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속에 서러운 응어리가 지고 한스러운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km정도 떨어져 있는 실로라는 곳에 성막이 있어서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그런데 그 올라가는 길에서 브닌나가 한 나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또 웁니다. 울며 밥도 먹지 않습니다. 마음과 영혼이 괴로운 것입니다.
한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갑니다. 괴롭고 아픈 마음 그대로 가지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니 서러움과 괴로움이 더 북받쳐 오릅니다. 눈에서는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뜨겁게 쏟아져 내립니다. 이렇게 한나는 뜨거운 눈물과 영혼의 아픔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어떤 심정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드렸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 건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기도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성도의 삶은 현재의 모습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어디에 있던지 항상 그 부르심의 사명 앞에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히 뉴질랜드에서 살아남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또 단순히 여기에서 성공하는 것에 그쳐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시든지 여기에서 생존하거나, 성공하는 정도에 만족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신 것은 이러한 삶의 목표를 뛰어넘어 의미 있는 삶(significant)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죽으시는 예수님의 그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는 제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돈은 많으나 초라하고 외면 받는 죄인이었던 삭개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새 삶을 주신 것 같이,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서라도 모든 영혼 위에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와 사랑이 임하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 마음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서라도 하나님만이 주시는 참 용서의 은혜와 진정한 사랑안에서 새 인생이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2005년 별세하신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께서 설교중에 이런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고부교회에서 목회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고난 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하루종일 금식하고 조용히 머리숙여 기도하다가 제단 가운데 있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음성이 제 심장을 울렸습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이 몸 버려 피 흘려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버리고 있느냐’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 종의 심령속에서 통곡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감당 할 수 없는 눈물이 제단을 적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 내렸습니다. 이 패역한 도성을 부둥켜 안고 밤이면 산에 올라가 온몸이 이슬에 젖도록 울었고, 낮이면 하나님을 모르는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렀습니다.’
이 글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애타는 마음으로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뉴질랜드라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만일 우리의 가슴이 주님의 십자가의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식은 가슴으로 산다면 주님께서 그냥 보고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뉴질랜드라는 이국 땅이라고 해서 십자가의 뜻을 대충 흘려버려도 되고, 우리는 소수민족이니 헤밀턴 부흥은 우리 몫이 아니라 키위 들 몫이라고 생각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죽은 영혼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를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꿈을 안고, 주님의 마음으로 깨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사명을 어물쩡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각자의 몫입니다.
혹 십자가의 꿈을 안고 주님의 마음으로 깨어 기도할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해서 책임이 면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그 깊은 뜻을 깨닫기를 등한히 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채우기 위한 길을 게을리 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꿈이 내게 와 닫지 않고, 주님의 그 간절함이 내게 실감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저를 영적 무지함 가운데 가두어 두시려나이까? 저의 이 무지함에서 저를 건져내어 주소서. 저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저를 깨워주소서.’
성 프란치스코는 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예수여, 내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첫째, 내 영혼과 육체가 괴로움을 겪어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하옵소서. 둘째, 당신이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그 따는 듯한 사랑을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랬을 때 그에게 양손에서 못박힌 자국이 생기고 피가 늘 흐르는 그 고통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동물들에게 조차도 형제 자매로 부를 정도로 깊은 사랑이 그 속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생 이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마음을 품고자 나아갈 때 주님께서 이 같이 허락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우리에 들지 않은 양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신을 버려서라도 그 뜻을 이루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간절함이 생명도 내어놓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뉴질랜드에 보낸 뜻도 그것입니다. 뜻이 있는 삶을 위해서 입니다. 즉, 이 곳에서 십자가의 꿈을 이룰 자로 깨어 간절히 기도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하나님께서 묻기 전에 십자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간절한 기도의 길을 삶의 최 우선 순위에다 놓고 속히 실천에 옮기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의 꿈을 위해 간절함으로 깨어 기도하십시오. 다니엘 같이는 못하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정한 시간에 있는 힘을 다해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십시오. 주님과 깊이 대화하는 시간을 꼭 만드십시오. 주님께서 임하고 십자가의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꿈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12절에 의하면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나는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울며불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영혼의 갈망을 담은 기도를 소리 없이 드리기 시작합니다. 긴 시간을 하나님을 대면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졸음과 싸워야 하고, 빨리 끝내버리려고 하는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또 몸의 피곤함과도 싸워야 합니다. 몸이라는 것이 훈련이 안되면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인내의 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 하고 비슷합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일단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좀이 쑤시고, 뻑적지근하고 밖에서 놀자는 싸인이 와도 꾹참고 앉아 있는 힘이 있어야하는데, 개미 하나만 지나가도 ‘거 신기하네 하고 그것에 신경을 뺏기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쳐다보고, 놀고 있는 다른 애들이나 쳐다보거나, 그새를 못 참아 핸드폰으로 마음을 빼앗기는 대로 그냥 방치하는 사람은 공부 잘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또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집중해서 할 일을 성실히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목표를 달성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엉덩이를 붙이고 끝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똑 같습니다. 아무리 졸리고, 피곤하고, 쉬고 싶고, 몸이 긁적거려도 정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아무런 은혜도 없는 것 같이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게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마다 찾아오는 반가운 생각은 ‘그래 빨리 끝내자, 하나님도 이런 기도를 원치 않아’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말은 마귀의 유혹에 가깝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기도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또 기도할 때 그런 유혹이 올 때, 더 쉽게 기도하기를 쉬고, 또 그 다음에 더 쉽게 포기를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기도를 쉬게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기도는 꼭 정한 시간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다가오는 유혹에 쉽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피곤하고 졸린다고 해도 꾹 참고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고,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를 드리고자 힘을 다해야 합니다. 졸음의 유혹이 올지라도 오늘은 쉬고 내일 해야 하지 하기 보다는 드려야 할 기도를 다 드리기 위한 최선의 인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했을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때까지 드린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경우 긴 시간을 하나님 앞에 머물면서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괴로운 나머지 먹지 않던 밥도 먹었습니다. 얼굴에서 근심의 기색이 떠났습니다.(18절) 하나님의 응답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해서 기도했더니 그 즉시로 배속에 저절로 애기가 들어서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나가 기도하기 전과 기도하기 후의 모습이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실 것에 대한 뜻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바뀐 것은 없지만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힘과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는 길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을 얻기 까지는 인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평생 동안 기도하면 1만 번의 응답을 받았다는 고아의 아버지 조지뮬러의 글입니다. 이 글은 1864년에 그가 쓴 글입니다.
‘1864년 현재
나는 어떤 축복을 생각하고 / 하나님께서 그것 주시기를 기다리며
19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그것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회심을 위한 것인데,
하지만 아직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6년 내지 7년을 기도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4년, 3년, 2년을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용기를 내어 새로운 열심을 품고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당신이 구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 확신만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십자가의 꿈이 우리에게 언제 어떻게 임하여 헤밀턴에 다시 믿음 부흥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흥의 일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다만 깨어서 그날이 속히 오기를 위해 인내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구주 예수께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낮 부르짓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교우 여러분, 꿈을 가지고 인내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자신과 싸우며, 응답을 주시기까지 낙심 말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십자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부르심을 신뢰하고 믿음의 부흥이 내 안에, 이 헤밀턴의 영혼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오직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시카고에 사는 토마스 학개라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회사들은 찾아다니면서 전무적인 충고를 통해서 회사를 살려내는 전문가였는데, 하루는 IGA(식료품자영업자 연합회)의 회장인 딕 해리슨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습니다. 재정상의 문제로 파산에 직면하게 되어 비상 이사회를 소집하고는 전문가 토마스 학개를 부른 것입니다. 토마스 학개는 절망하고 있는 회사 중역들 앞에서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파산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잠시 없는 것뿐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가끔은 머리를 숙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서 실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무릎꿇고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순간 충격적으로 중역실이 조용해졌습니다. 한 순간 의아해지더니 다음 순간 한 사람씩 의자를 뒤로 밀어놓고는 모두들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학개씨도 무릅을 꿇으면서 ‘한쪽 무릎 만 꿇으면 하나님은 그를 반쪽 사람으로 여기시고, 양쪽을 다꿇으면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하고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들이 현재 직면한 위기 너머에 있는 비전을 보게 하소서. 이들이 자신들과 자신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것 보다 주님께서 많이 신경을 쓰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옵소서.’
이 기도가 끝난 후, 각자 조금씩 희생을 하면서 지혜와 경험을 한데 모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하면서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주님께서도 생전에 늘 새벽을 깨우셨습니다. 수많은 무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시기 위해 때로는 먹지 못하고, 잠이 부족해도 주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교제하였고, 새 힘을 얻어 일하셨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깨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교회와 해밀턴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주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되, 인내함으로 응답이 임하기까지 깨어 기도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