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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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제목온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 감사하라(시편 103:1-5)2010-12-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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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한 농부가 기쁨에 찬 얼굴로 아내에게 달려와 암소가 두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했습니다. 한 마리는 붉고 다른 한 마리는 흰 송아지 였습니다. 너무 감사한 나머지 ‘이 두마리 중 한 마리를 때가 되면 팔아서 주님을 위해서 헌금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도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물었습니다. ‘주님께 바칠 송아지는 어느 것이에요?’ 남편은 ‘그런일에는 신경쓰지 말아요. 두마리를 키우다가 때가 되면 그 때 정정하기로 합시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시간 지나 몇개월이 흘러가는 동안 두 송아지도 무럭무럭 잘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하는 말이 ‘여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어느것이 주님의 송아지인지 결정하지 않았잖아요?’이에 남편이 대답하기를 ‘나는 말야, 벌써부터 흰 놈을 드리려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하필 흰 놈이 죽어버렸어’하고 말했답니다.


재미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 하는 속좁은 우리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아까워하는 이기적인 모습과 말로만의 감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620년 청교도 102명이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해 겨울 미국 플리머그 항구에 이들이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3월까지 50명이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그들은 원주민 인디언들에게 곡식 종자를 얻어 심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첫 곡식을 추수하고 ‘이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여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게 됨에서 이 절기가 유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조금 다른 얘기도 있는데 102명의 청교도들이 플리머그에 도착해서 농사를 지며 거기에서 생존한 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들이 첫 농사의 수확을 거두고 그것에 감사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농사에 거의 실패하고, 전염병과 빌린 배에 대한 빚과 인디언들의 위협속에 처하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예배를 드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어떤 이야기든지 간에 다 눈물나는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한 것이 그렇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인도하여주실 것을 믿음으로 보고 미리 감사한 것이 그렇습니다.


다윗도 오늘 시편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전 존재, 전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라 선포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큰 컸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하고 말합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응답으로서의 신뢰와 순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로 드려야 할 것은 우리 존재요,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드리는 고백과 감사의 예물에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 때 그것은 너무나 가벼운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먼저 모든 죄악을 사하신 은혜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가 우리를 용서하여 주신 은혜입니다.우리가 살면서 제일 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용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의 대상은

대체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요, 원수와 같은 사람이요, 어디 가다가 만날까봐

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사랑하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롬5:10)

왜그렇습니까? 우리 몸과 마음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찾는 것보다 세상이 더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과 감정이 더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아예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또 이웃을 섬기라는 인생을 자기 이익에 추구하는데만 충성합니다.

게다가 악한 혀, 거짓 된 마음, 음란, 부정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 받은 거룩함과는 전혀 반대로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행동합니다. 그리하여 비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지옥으로 향하여 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참한 존재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사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피로 우리를 죄없다 하시고 영원히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날 사랑하사 우리 영혼의 비참함과 죽음에서 살려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2 주전 오클랜드에 다녀 온적이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약간 졸려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국악 가락으로 불렀습니다. 가사 내용은 특별히 정하여진 것은 없었으나 주제 하나는 분명했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익숙한 국악 가락에 저 혼자 십자가 속에 흐르는 삼위 하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동시에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성령께서 그 때 은혜를 주셔서 그런 내용들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게 해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의 눈물과 아픔을 씻어 하나님의 영광안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과 희생, 동시에 아버지의 그 깊은 뜻에 따라 그 아픔과 고통과 수치를 달게 받으며 그 모든 고통을 참으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 성령 하나님께서 그 아픔을 보며 함께 아파하는 모습이 뜨겁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하는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에 제 눈에서는 주체 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이 뜨거운 하나님의 그 사랑을 다시금 경험하면서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의 원수된 바울 자신을 위해 죽음으로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그 은혜는 자신에겐 너무나 과분한 것이요, 분에 넘치는 것이요, 갚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에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려 감사해야하겠습니다.


둘째 모든 병을 고쳐주신 은혜입니다.(3)

다윗이 어떤 병에 걸렸다가 치유를 받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를 덧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성도님들께도 그러한 경험이 있을 실 것입니다. 아팠지만 다시 회복되어 변함없이

공부할 수 있고, 자녀를 돌볼 수 있게 되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경험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치유의 과정중에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심한 질병의 경우는 어쩌면 희망이 없는 것 같이 여겨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질병이 나았는지의 여부가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경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의 고통과 아픔이 지속되는 경우에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의 계획을 보는 은혜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전에도 한 번 소개 드렸는데 이분도 여전히 몸에 달고서 수많은 질병과 계속해 싸우고 있는 ‘마르바 던’이라는 여성 신학자가 이렇게 권면합니다.

[질병 뿐 아니라, 환경적, 정신적 고통속에서 희망을 발견 할 수 없을 때 ‘왜?’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질문하라.] ‘하나님 이 속에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격고 있는 알 수 없는 질병과 고통속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속에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질문할 때 논리적 의미, 감정적 위안을 얻고자 집착하는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생각의 첫자리에 모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라고 물으며 하나님께 답을 요구하던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공급하시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듣는 자리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 같이, 나의 고통과 질병의 아픔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보고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속에서 계신 하나님, 그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하루 우리에게 살아 있는 생명을 주심을 감사하고, 질병이 낳았던 안 나았던 간에 거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고 있음을 믿고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크시고, 우리의 지혜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 이름도 없는 무명의 시가 걸려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 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와 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 될 수 있습니다. ......

먹고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질병의 아픔과 혹은 정신적 고통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아픔과 고통을 통하여서만 주시려는 특별한 은혜가 거기에 있습니다.


셋째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의 은혜입니다.(4)

다윗은 왕이지만 숫한 싸움의 자리에 섰던 사람입니다. 어려서 사자를 비롯한 짐승들과 양을 치며 싸웠습니다. 또 골리앗과도 싸웠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의 반역에도 맞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덧입은 다윗은 시편 234절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무서워 아니 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다윗의 경험과 달리 그다지 큰 이적이나 신비한 일을

경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마도 다윗과 같은 찬양이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편 어떤 분께서는 지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 혹은 실직으로 인해 겪는 고통속에 있는 가운데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의 감사는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믿음의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 내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주시지 아니 할 것이며,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나의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함께 하여 주시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깊은 사랑은 아까워 할 것이 없고, 사명을 다하기 까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13:8)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여 있다하여도 이 같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넷째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여 독수리 처럼 힘있게 날게 하시는 은혜입니다.(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감사는 주신 것에 대한 당연한 감사뿐아니라, 그렇지 않음에도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항상 감사에 믿음이 들어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여기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은 매우 궁핍하고 초라합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즐거워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듯이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않습니다. 힘이되신 여호와께서 이끌어 내 주실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께는 그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좋은 것으로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픔과 곤란과 어둠가운데서 처하여 있다면 하박국 선지자의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을 독수리같이 날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 외에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52:9)

마치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늘 푸른 것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는 나무에 견주어, 자신이 그렇게 될 것임음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닉부이 치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고 달랑 발가락 두개만 허리 믿에 달고 나온 사람입니다. 희망 없는 존재로 태어난 닉부이치지,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를 돌며 희망을 주는 희망전도사로 높이 올려져 쓰임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닉부이치치씨도 어렸을 땐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열 살 때 바다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모두 세차례 자사을 시도했지만 열 다설 살 때 자살 시도를 멈췄습니다.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발견한 것은 열 다섯 살 때 성경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하신 것’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을(9;3)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창조주가 나를 향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믿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팔다리 없이 발가락 두 개만 있는 몸이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수쿠버다이빙을 했습니다. 노래를 작곡하기도하고 뮤직 비디오도 찍고, 영화에도 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채움을 얻는 길은 오직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공급함 같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거기에 우리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 처하여도 항상 감사하십시오. 스펄전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다빛을 주고, 달 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 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 도우신다는 약속입니다. 진실한 감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 세우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대한 참된 태도가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용서하고, 상한 우리 몸과 마음을 고치시고, 우리를 수렁에서 건져 내주시고, 우리를 독수리같이 힘있게 세우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늘 감사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리고 영화롭게 해드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최고의 감사는 매일 여러분 자신을 드려 순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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