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배와 말씀

PRESBYERIAN CHURCH

금주의 말씀

제목“본이 되는 교회(1)” (살전 1:2-8 / 20061008)2007-03-21 15:42
작성자 Level 10
“본이 되는 교회(1)” (살전 1:2-8 / 20061008)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샬롯이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 갈보리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 글렌 와그너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아주 특별한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Escape from Church Incorporated, 교회주식회사로부터의 탈출, 제목이 특수하지 않습니까? 한국어 제목으로는 “하나님의 교회 VS 교회 주식회사”라는 책을 써서,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그가 신학대학을 마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위도 얻고 공부를 마친 다음에, 어떤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당회에서 당회서기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문서를 전해주더랍니다. “이제 당신은 향후 6년 동안 진행될 전략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최고 경영자가 진행하는 20가지 사업목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가 주식회사가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사업체에서나, 주주총회에서나 하는 얘기를 여기서 하고 있는가>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겁니다.
은혜가 아닌 이익을 생각하고, 멘토링이 아닌 경영을 생각하고, 양육이 아닌 숫자, 사역이 아닌 관리, 사람이 아닌 프로그램, 그리고 목자가 아닌 사장으로서 자기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가 어디까지 왔나,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독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론입니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앙생활에서 중요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오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첫째, 교회는 공부방이 아닙니다. 몇 사람 모여서 성경공부 한다고 그게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뭐, 교회에 나갈 거 있나. 우리 집에서 몇 사람 모여서 성경공부하면 그게 교회지>. 한평생 공부해도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또한, 교회는 친교단체가 아닙니다. 친교가 있고, 사랑이 있고, 교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교가 교회는 아닙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소가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뿔이 있다고 소는 아닙니다.

또한,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교회를 평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평가잣대는 이것입니다. <교회가 구제를 얼마나 하나>. 그러면서 교회가 구제를 안한다고, 또 왜 나를 왜 안 도와주냐고 말합니다. 교회를 구제기관으로 착각하고 있는데요, 물론 교회가 구제하고 봉사해야죠, 그래도 그 구제를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제가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교회는 경영기관이 아닙니다. 자선사업, 사회사업도 하죠. 그래도 비즈니스가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약성경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여러분, 여기가 교회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요, 그리스도가 지켜주시는 교회요, 그리스도가 함께 해서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깊은 뜻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거기에 내가 있겠다 하십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영감이 있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친히 만나주시는 곳.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보지만 영으로는 주님을 보고, 사람의 음성을 듣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에요. 이래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선포되어서 지식이 되는 게 아니고, 선포되어서 능력이 되는 겁니다. 생명력을 생산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갔다 왔다는 말은 예배실 안에 앉아 있다 왔다는 의미로 굳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입니까? 예배드리며 주님을 만나고 왔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어떤 신비한 것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 드리시며, 찬송을 부르시죠? 기도를 하시죠?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시죠?

그때, 찬송하면서 높으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쁨과 경외심이 있으면 됩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 같은 평안함이 있으면 됩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걸 원하시는구나> 깨달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부터 그렇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면, 여러분, 그게 주님을 만나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면 변화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 아주 모범이 되는 그런 교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등 많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칭찬하고 또 사도 바울의 마음에 만족히 여기는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본이 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교회에 있었던 3가지의 중요한 속성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먼저, 믿음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는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른 믿음이 중요합니다. 바른 믿음 속에서 바른 행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란 믿음의 행위, 실천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행위가 바르지 않거나, 실천이 없다면 그 믿음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데, 믿음이 없다면 위험합니다. 문제입니다. 그 행위가 헛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사랑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수고가 없다면 그 사랑의 진실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반대로, 수고하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기쁨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사랑이 수고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어야 인내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인내는 극기훈련입니다. 내 뜻과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소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줍니다. 히브리서 7장 24-25절은 말씀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여러분, 소망을 보이는 것에 두면 안됩니다. 땅에 두면 안됩니다. 없어질 것에 두면 안됩니다. 특별히, 내 소원에 두면 안됩니다. 내 소원에 소망을 두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에 소망은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그러나 소망을 보이지 않는 것에, 하늘에, 영원한 것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분은 아시며, 내가 사는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한 가족된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과 함께 이런 공동체를 가슴에 품고 함께 가꾸어가기 원합니다.

1.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사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 움직이는 공동체.

2. 나를 살리기 위해 생명까지 주신 예수의 고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수 많은 이 땅의 ‘너’들을 향해 마음속에 가 득 차 주체할 수 없는 열정적인 수고를 쏟아내는 공동체.

3.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인내 속에서 사는 게 사는 것 같은 기쁨은 물론이고, 마침내 더 없이 좋은 것을 받는 행복을 누리는 공동체.

우리 해밀턴한인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가득 차 본이 되는 교회로서 날마다 건강하게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