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5㈜ 주일예배-야외예배 본문 시편 33:6-12 제목 창조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 오늘 말씀은 시편 33편 말씀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1-3절에서 “즐거워라”, 감사하라 찬송하라, 노래하라, 연주하라” 외칩니다. .왜 오늘 시편에서 여호와를 이렇게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노래하고 연주하라는 것일까요? 이 시편의 기록자가 여호와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가 발견한 하나님의 위대함은 무엇일까요? 4절, 5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요,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증거합니다. 첫째 여호와는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자가 이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고, 그 만상을 그의 입의 기운으로 이루었도다”(6절)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 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9절) 하늘과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만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놀라운 질서를 보고 조물주가 있음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런던대학의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개이며 최신 전자 망원경을 가지고 한 은하안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1000~2,000억개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은하가 천억개 이상입니다. 그러니 그리고 최신 망원경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 전체 우주 속의 별들의 수는 2,000억 x 1,000억 개라는 천문학적 숫자라고 했습니다. 상상을 불어하는 별이 이 주에 들어차 있고, 이 많은 별과 행성이 들어 있는 이 우주는 또 얼마나 넓은 것입니까? 우리가 자주 들어본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 조차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에서 빛의 속도로 254만년(254LY)이나 달려가야 만나는 거리에 있을 정도이니 우주는 참으로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반짝거리는 어떤 별빛은 10만 광년전에 반짝였던 빛이 이 우주를 쉼없이 달려와 어제 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고, 254만년 광년을 달려온 안드로메다 은하의 빛일 수도 있습니다. 우주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넓은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우주가 미세하게 조정 되어 한치의 착오도 없이 시계보다 더 세밀하게 운행되는 모습을 볼 때 이것은 누군가의 위대한 작품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교하게 돌아가는 시계를 보고 어느 날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우주 연구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깨닫고는 찬송가 79장이 자기 신앙의 간증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 우주의 관찰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보다 확실하게 깨닫는 길이 있습니다. 과학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 안에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음에서 살리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들 예수를 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이요,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밤하늘 우주를 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위대한 우주 정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이 땅의 모든 자연만물을 우리에게 마당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이것을 아는 자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다 너희들 것이란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 안에서 우리는 아무 것이 없어도 다 아버지께서 주신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누리고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시편기자가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명령합니다. 그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하라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위대한 발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밤하늘에 펼쳐진 대 우주를 바라보며, 또 날마다 이 자연을 대하며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권능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경외를 받으셔야 마땅한 창조주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 없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힘있는 나라가 이끌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 보다는 세상의 어지러운 생각들이 지배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현상일뿐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듯이, 이 거대한 우주와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사 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모든 인간이 타락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인간과 그 지배를 받는 이 자연도 착취의 대상이 되어 고통 당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오사 죽으시고 부활하사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태초의 창조 때와 같은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여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완전이 새롭게 갱신 된 회복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언제 그렇게 될까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수 많은 나라와 문화와 사상들이 이것을 부인합니다. 왜요?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세속화로 인하여 더 이상 정부가 특정 종교를 지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책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관 없이 세워지고 운행됩니다. 한편 무슬림 중에 강경파는 기독교를 원수처럼 여기고 믿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기독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종결 될까요? 시편기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인간의 계획과 철학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한 것 같으나 진리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8세기부터 시작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과학주의가 믿음의 세계를 위축시키며 오만을 떨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Artificial Intelligent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고 위협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첨단 응용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종교는 더욱 설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프리초프 카프라는 물리학자가 1982년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이라는 책에서 나와 정신을 분리하는 구시대의 과학 주의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영역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3천년 전에 그 사실을 기록해 놓았것만 현대과학은 1980년대에 인식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프리초프 카프라보다 훨씬 일찍 이러한 인식을 했었던 한 과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지체부자유자이고, 과학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은 지체부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과학자체만으로 온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학이 보지 못하는 더 깊고 높은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했을까요?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발판을 놓은 아윈쉬타인 말했습니다. 아윈쉬타인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장을 겉 옷이 아니라 몸 안에 달고 계시다” 이 말은 과학자들이 현미경만 가지고 겉만 보고 하나님이 없다는 편협과 무지를 꾸짓는 말인 것입니다. 결국 요즘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과학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는 말을 입증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과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이 보지 못하는 더 높고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 안에서 보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이 광할한 우주를 지으신 권능의 하나님이 계심을 보고 놀라는 온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이 우주를 지으시고 이 역사를 그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창조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세운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붙드시고 보존해야 할 만큼 가장 존귀한 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는 그것이 이스라엘었으나 지금은 누구입니까? 아들 예수의 피를 주고 택하신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왜 복일까요? 18-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 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많은 군대도 자신을 구할 수 없고 스스로 힘이 세도 자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백성을 하나님께 살핀다는 말씀입니다. 즉 창조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사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절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을 향해 도망 가다가 벧엘에서 돌을 베고 초라한 잠을 청합니다. 하늘을 수 놓은 수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깊은 우수에 잠겨 뒤척이다 잠이 듭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고향에 돌아 올 날이 있을까?” “도망가는 나의 인생은 무엇일까?” 그러나 광야에서 홀로 깊은 고뇌 속에서 돌을 베게 삼아 자던 그 날밤, 그의 일생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꿈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잊을 수 없는 언약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너를 떠나지 않고 반드시 지킬 것이며,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듣고 야곱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혼자 버려진 초라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사 지키고 이끄시는 인생임을 안 것입니다. 이에 야곱은 “과연 하나님 여기 계시구나”하고 그가 베고 잔 돌을 제단으로 삼아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곤 세월이지나자 마침내 하나님의 언약대로 지팡이만 가지고 도망하던 야곱이 두떼나 이루는 가축들과 열두 아들을 데리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온전하게 이행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도망가는 야곱 조차 사랑하사 그에게 언약을 주시고 언약을 지키셨는데, 하물며 아들의 피로 자녀 삼으신 우리는 더 얼마나 사랑을 받으며 얼마나 더 인도를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살리시는 우리 도움과 방패시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방패가 되사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우주와 자연을 너에게 주었다. 이것이 다 네 것이다. 이후로 이보다 더한 새 하늘과 새땅을 주리라. 그날이 되기까지 내가 너를 도울 것이며 방패가 되어 보호 할 것이다. 너는 창조와 역사의 주인 되신 네 하나님을 신뢰하라. 찬양하라. 감사하라. 새 마음으로 노래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요, 네 도움과 방패시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