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5(월) 성탄절예배 본문 눅 2:1-20 제목 성탄절을 맞이하여 메리 크리스마스!!! 평와의 왕,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죄와 흑암의 땅에 생명의 빛이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났을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BC 27-AD12년까지 통치했던 기간, 또 현 시리아 지역인 당시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첫 번째 인구 조사를 할 때 B.C4년에 예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가는 구유, 여물통이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하여 그 여물통에 뉘인 아기가 천사들이 전해 준 구원자, 그리스도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하늘에 영광이 되고,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를 주실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나아가 예수가 난지 8일 되어 할례를 받고,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에 갔을 때 그를 알아본 시므온의 찬송,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의 기도응답, 12살 예수의 자아의식, 세례요한의 증거, 예수의 등장과 족보, 예수의 40일 시험과 승리,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 예수의 치유사역, 산상 수훈, 치유 사역, 죽은 아들을 살리는 사역, 씨뿌리는 비유, 귀신들린 자의 치유, 혈우병 여인의 치유, 베드로의 고백, 변화산의 사건, 제자들의 누가 크냐 분쟁, 70인제자 파송, 영생을 얻고자 하는 부자청년, 기도 가르침….그리고 맨 나중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록을 통하여 누가는 무엇을 말합니다. 이 구유에 뉘인 아기가 바로 모든 백성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인바, 그가 우리를 죄에서, 인생의 흑암에서, 죽음에서 건져 내실 구원자, 그리스도,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성부 하나님께서 전 우주적으로 가장 존귀한 선물, 곧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에게 주신 날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날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여력이 없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하신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신 성부 하나님께 무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분주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한해를 살면서 큰 은덕을 베푸신 손길들의 고마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카드를 준비하고, 작으나마 선물을 준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자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사 우리의 구원과 기쁨과 평화, 소망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요? 온 마음과 몸을 다해 감사와 영광을 돌려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 찾아 동방 박사들이 존귀한 예물을 드려 경배함 같이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 가장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감사로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서로들 많은 성탄 인사가 오가는 중 하나님께서 갑자기 짧은 싯구절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구원하실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네. 여기 암울한 땅 메마른 눈물을 흘리는 광야 잎 바랜 마른 풀들 위에 사랑과 용서의 피로 광야를 적시고 씻어 생명의 기쁨으로 춤추도록 그대와 나를 나와 우리를. 그리운 주여, 감사와 찬미를 받으사이다“ 이 성탄절에 아들을 주신 성부 하나님께 몸소 낮고 천한 곳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예배함으로 존귀와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평화의 왕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의 평범한 삶을 지나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죄인이요 원수이나 사랑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참으로 우리의 평화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증거들이 복음서에 가득합니다. 우선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펼쳐 읽으신 말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힌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주 오시기전 B.C 740-680년 걸쳐 선지자 사역을 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메시야 도래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야가 이 땅의 고통 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은혜를 베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수행 할 그 메시야는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40일 시험을 승리로고 끝내고는 첫 사역의 길에 회당에 들어 이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펼쳐 읽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씀합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마침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이 말씀을 입증하는 삶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그 당시에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하며 마냥 죽을 날 받아 논것 같이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 때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 중 주 예수께 나오는 자들은 다 고쳐 질병과 질병으로 말미암은 절망에서 건져내사 그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평생을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절망과 우울의 깊은 늪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자유하게 하사 그 눈물을 닦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최후에는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하며 십자가에 처형을 당합니다.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와 생명을 죄에게 내어주고,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거룩한 자녀로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사 살아계셔 지금도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계십니다. 자유케하사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아주 특별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인간의 복지에 대해서, 그것도 한 개인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복지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너먼 교수는 이 질문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운 이유는 개인의 복지 어쩌고 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질문 그대로 겉으로 행복한 척, 겉으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괴롭고 힘들어 울고 있거나 울고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너먼 교수는 여기서 아주 특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체면을 생각하여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속으로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쁜 성탄절에도 속으로 울고 있는 성도님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 주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7장에 아들을 잃은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도 없는 여인이 아들을 잃었으니 그 얼마나 가슴이 며지며, 그 슬픔이 얼마나 크고 아팠겠습니까? 하여 장례를 치루고자 그 시신을 메고 나올 때 그 어머니는 큰 슬픔과 절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웁니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모습을 예수께서 보셨습니다. 그리곤 아들 잃은 여인에게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그리곤 그 슬픔과 눈물의 근원이었던 죽은 아들을 다시 일으켜 생명이 돌아오게 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는 아들 잃은 아픔과 눈물을 주님께서 오사 그 마음을 아시고 닦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더러운 옷 같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참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아픔을 아십니다. 처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울지마라.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붙들리라” 이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주로 오신 예수를 날마다 기도로 말씀으로 마음에 깊이 모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만지사 자유케 하시고 참 평화를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평화의 길을 가라 하십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깊이 모시고 동해 할 때 주께서 날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울 수밖에 없고, 절망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평화와 소망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고, 감당할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덧입은 자들의 기록이 바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역사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여 자유케 된 심령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 주,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동시에 과거의 옛 삶을 버리고 겸손과 인내와 십자가 사랑의 짐을 지는 길을 간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를 순종하는 증인과 평화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길을 생명을 다하기 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진리의 길이요, 그 길이 옳다 하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맞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 곧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쳐 주신 성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 것입니다. 그 교훈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성도에 합당한 삶, 곧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세상은 원수를 갚아라 복수하라 적을 미워하라 네 힘으로 정의를 행사하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 같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못 밖은 원수인 우리들의 죄악을 끝까지 참으셨고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원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기까지 사랑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를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어떤 마음이 중심에 콱 박혀 있어야 하겠습니까? 사랑으로 세우는 평화의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감에 필요한 십자가를 질 때, 주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나아가 다시 오셔서 “잘 했다, 충성된 아들아, 충성된 딸아”하고 우리를 품어 주실 줄 믿습니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절 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습니다. 점심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 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 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끌고 갔다. 그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는 누구입니까? 다시 오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그 길을 걷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 길은 바로 사랑의 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주님을 가장 온전히 주를 모시는 길이요, 평화의 사도로 보냄 받은 우리가 평생 걸어야 할 길입니다. 가장 작은 자, 심지어 아프게 한 자 마저 사랑으로 섬기는 평화의 길을 가십시오. 거기에 주님이 함께 계실 것입니다. 더 큰 평화와 권능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성탄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에게 오셔서 평화의 왕이 되신 주 예수께 날마다 감사하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예수를 기도로 말씀으로 모시세요. 그리고 주의 주신 은혜와 평화로 이웃과 평화 하는 길을 겸손하게 걸어가십시오. 이 길을 옳다하시며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거짓 없는 사랑의 길을 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