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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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제목새로운 창2018-04-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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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부활주일예배

본문 요 20:1-10

제목 새로운 창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셨습니다할렐루야!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때 다시 오십니다할렐루야!

 

이렇게 힘차게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포할 때 어떤 분은 속으로 정말인가?

나는 왜 아무 느낌이 없지?

더 나아가 21세기에 왠 봉창두드리는 소리하고 의아해 하는 분도

혹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상입니다.

오는 본문에 보면 예수님에 의해 택함 받아 3년이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조차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따라 가보겠습니다. 1절에 안식 후 첫날이라 합니다.

유대사회에서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서 시작해 다음날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해진 후인 토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이 시작됩니다토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일요일 오후까지입니다그러니까 마리아가 안식 추 첫날 일찍 아직 어두울 때란일요일 새벽을 말합니다날로치면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으니까금요일토요일을 지나일요일 새벽입니다그래서 삼일후에 부활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돌문으로 막을 무덤에 이르렀습니다석회암지대를 파서 만든 동굴형 무덤은 여러 시신을 넣을 수 있고입구에는 무거운 둥근 돌로 막아놓습니다여자는 돌을 굴려 열 수가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입니다그런데 그 돌이 굴려져 무덤이 열려있었습니다한국으로 치면 삼우제 지내러 갔는데 봉분이 사라지고 관이 보이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놀래서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달려갑니다이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소식을 베드로와 막내 제자인 요한에게 전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제일 먼저 무덤이 열린 것을 보았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개념이 없는 말을 합니다그의 입장에서 볼 때 무덤이 빈 것은 누군가 예수의 시체를 다른 곳에 옮겼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부활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고일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유대인들 일부는 부활이 있다고 믿었는데매우 한정적으로 부활이란 개념을 적용해서 사용했습니다유령환영귀신이 아니라죽은 자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본래의 육체를 가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즉 유대 사회에서 부활이란 단어를 쓸 때는 한 가지 경우 외에는 이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확실하게 죽어서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본래의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다시 사는 경우에만 부활이란 단어를 썼다는 것입니다그러니 죽은 줄 알았는데 곧 깨어났다혹은 죽었지만 내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억의 개념이 아닙니다죽은 다음에 시간이 지난 후 본래의 육체의 모습을 가지고 다시 살아난 경우를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있는 부활이란 어느 한 사람의 부활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일제히 다시 살게 한다는 식의 단체부활을 믿었습니다.

 

그 예가 요한복음 11장 나사로가 죽었을 때 3일이나 지나 예수께서 오셨을 때 마르다와 나눈 대화 속에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합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가 말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는 다시 살아날 줄 믿습니다

 

자 여기에서 마지막 날 부활 때라고 마르다 말합니다. ‘마지막 날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날입니다그러니까 마르다는 그 때가 되면 우리 오빠도 다른 사람들처럼 부활 할 줄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 단체로 부활 한다는 개념만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당시 일부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삼일 후에 살아 날 것을 가르쳤을 때 그들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그렇기에 그 날 새벽에 빈 무덤을 본 마리아도 부활을 생각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이 시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베드로와 요한도 마찬 가지입니다이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어쩌구니 없는 얘기를 듣고 둘이 경주하듯 달리기를 합니다먼저 도착한 요한은 시체가 사라진 곳에 무슨 유령이라도 느닷없이 확 튀어나올까 무서워 들어가지도 못합니다반면 늦게 도착 했지만 본래의 성격대로 베드로는 도착하자마 숨도 고르지 않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 사실을 확인합니다아닌게아니라 정말 무덤 안에는 예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예수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어떻게 된 것일까누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습니다죽은 예수의 시체를 싸았던 세마포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폭삭 내려 앉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시체를 누군가 가져갔다면 그대로 가져가든가아니면 천을 벗겼다면 아무렇게나 해놓고 갔을 것입니다그런데 천이 흩으러짐 없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또 게다가 머리를 쌌던 천도 그대로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누군가 예수 시체를 훔쳐 간 것이 아님을 묘사하는 내용입니다훔쳐갔다면 급하게 서둘렀을 텐데예수의 몸을 쌌던 천이며머리에 두른 것이 그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들어가 이렇게 확인 하는 모습을 보고안심이 된 요한도 뒤 따라 들어가 안을 살핍니다그리곤 천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통해 어렴풋이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그러나 9절에서 기록 되어 있듯이 이들은 아직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앞서 말씀드린대로 단체 부활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던데다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결국 이렇게 아리송한 모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바로 이것이 당시 빈 무덤을 보고 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이러한 점에서 그 때 당시나그리고 지금이나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무덤이 비어 있다는 정황증거만 있는 상태에서는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 순간 확 전환 됩니다예수를 부활하셨다는 믿음이 분명하게 들어선 것입니다언제 그랬습니까부활하신 예수즉 유령환상귀신이 아니라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 그대로 다시 살아난 예수를 만났을 때 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빈 무덤을 본 후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요한복음 20:15절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먼저 예수를 만났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그리곤 이 놀라운 얘기를 전해들은 제자들의 경우 같은 날즉 일요일 저녁 때 였습니다묻 닫고 숨죽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그리곤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나 어떤 제자는 유령인줄 알고 두려워하고 믿지 않습니다이에 먹을 것을 달라하사 구운 생선을 드시기까지 합니다그러나 이런 것을 보지 못했던 제자 중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께서 부활했다 해도 그는 끝까지 않믿었습니다그의 상식으로는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아직도 1차원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도 결국 손과 발의 못 자국난 예수창으로 찔린 가슴을 보여주시는 예수를 보고는 엎드려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20:27)

 

이렇게 제자들도 보기 전에는 그들의 상식 눈 때문에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그러니 과학의 눈으로 무장 된 현 시대의 우리는 얼마나 더 예수부활을 믿기 어렵겠습니까당연한 것입니다그러니 이 한 가지를 봐서 우리는 시대를 잘 못 태어났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복잡한 생각을 안 할 때 태어났습니다쿨하게 믿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예수님의 그 놀라운 기적과 그 권능의 말씀을 보고도 안 믿는 사람은 끝까지 안 믿었습니다왜 그렇습니까죄와 악한 마음 때문에또 악한 영이 그 시대의 종교철학지식을 동원하여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믿고 안 믿고는 시대의 문제가 아닙니다만약 시대의 문제라면 21세기에 예수의 부활 믿고 그 예수를 위해 목숨을 거는 현상을 어떻게 풀 수 있겠습니까여기 단에 서 있는 제가 과학실력이 모자라서 예수를 믿는 것일까요여기에 계신 분들이 21세기 과학 상식이 모자라서 입니까백보양보 해서 좀 과학지식이 모자라 그렇다고 한다면 위대한 과학자들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찰스 쿨슨이라 학자가 이었습니다찰스 쿨슨은 분자궤도 이론을 구축한 세 명의 학자 중 한 사람이다그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상을 받기 위한 첫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노벨상을 받기위한 첫 단계는 65세가 되도록 살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두 번째 시험은 30대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어야 하는 것입니다쿨슨은 30대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그러나 64세에 죽었다그래서 상을 받지 못했다이런 쿨슨은 오랫동안 옥스포드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습니다동시에 감리교의 평신도 사역자이기도 했다그는 과학자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을 위한 대변자였고 'God for gaps이라는 신학책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그가 1930년에 20세의 캠브리지대학 학생으로서 예수님과 대화한 내용을 메모한 글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을 찾았던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났다나는 내 생애 최초로 하나님께서 내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셨다내가 전에 전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그 때에 드린 기도는 그 날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인생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그 목적은 모든 것들을 아름다운 색으로 입혀버린다.”

쿨슨은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이 만남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난 그 하나님이 누구입니까바로 오늘 빈 무덤을 보았을 때는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부활하신 예수 였습니다그런데 당시 예수의 제자들이 만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증거를 성경으로 남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하나님이시오지금도 살아계시다.” 그래서 이 내용을 말씀으로 읽고들으며 살아계신 예수님을 향하여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한 것입니다그랬을 때 그는 그날 밤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 한 것입니다제자들이 기록한 그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실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드렸습니다예수님은 죽으셨다그러나 승천하셨다우주 어느 공간이 아니라하나님의 차원하나님의 세계곧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가지셨던 영광의 세계에 계시며우리를 위해 간절한 중배와 중보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대 제사장으로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차원의 세계가 저멀리 아득한 심원의 세계가 아니라항상 우리의 현실과 맞다아 있다고 했습니다즉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과 부활의 예수를 목격한 증인들을 통해 기록한 성경을 펼치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는 지금도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맞추시는 분에겐 오늘 부활절 계란 두 개 드실 수 있도록 특별 배려를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신학교에서 심오한 신학을

공부했을 때였겠습니까신학이란 신자도 모를 때 였겠습니까?

언제 였겠습니까신학이란 신자도 모를 때 였습니다.

그 때 저는 예수 믿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왜요?

예수 잘 믿는 친구들을 볼 때 마다 든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얘들은 내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기쁨과 세계를 보는 것 같다. 내가 멋있다고 여기는 나의 세계는 이들의 것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예수를 깊이 알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파마음에 파고들었습니다그리고 그 때 있는 힘을 다해 성경을 일고공부하고기도하며 예수를 알고자 했습니다그랬을 때 예수를 찾는 그 과정을 통해 어느 날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의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할렐루야!

 

그 하나님이 누구입니까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의심했으나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생명을 걸고 증거하였던 부활의 예수 였습니다그러자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단이 섰습니다예수를 위해 목숨을 걸자그는 실재하는 하나님이요그렇기에 진정한 인생의 길은 이 하나님을 눈을 세상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가 세상을 지었고나를 지었으니 그를 믿고 따르는 것 보다 더 진정한 길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씀드릴려고 죄송스럽게 제 얘기를 했을까요? 이 자리에 계신 누구나 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으며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살아계신 예수의 능력과 영광에 사로잡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탄절이 없었습니다사순절 묵상기간도 없었없었습니다그들에겐 오직 하나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부활했으며그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과 믿음이었습니다이 사실이 너무나 엄청났기에 이들은 예배를 유대교처럼 금요일 저녁이 아니라 일요일즉 예수 부활하신 날에 예배를 드릴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진정 나를 죄를 깨끗케 하신 분이요.

부활하신 예수야 말로 죽음을 깨트리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요,

부활하신 예수야 말로 살아 계서 함께 계시는 참 하나님이시오,

그 믿고 따르는 자를 당신의 능력과 권능으로 인도하시며

죽음도 이기게 하시는 분으로서

진정한 하나님온 세상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창조자 되시고역사의 주인 되시고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두렵겠으며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지금 나의 아이에게이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도하고 생각해보십시오자기 목숨을 주기까지 그 큰 사랑으로 아이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이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이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권능을 덧입고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신 그 큰 사랑을 날마다 덧입어 사는 진정한 예수의 제자진정한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날마다 살아계시고 권능과 사랑으로 함께 계시는 예수를 만나고자사모하고 찾는 자입니다신학 정공하지 않아도예수를 날마다 찾는 자는 그 어느 신학자 보다 위대한 신앙살아계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증언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를 찾음으로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는 은혜와

죽음을 깨트리고 승리하신 그 권능을 덧입어 세상을 새롭게 보는 새 창을 가지고 새 삶을 사는 성도의 길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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