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7(주) 주일예배 본문 시편 119편 105절 제목 어둔 사람 밝은 사람 목적 항상 말씀으로 달려가는 성도가 되게 하려 함이다. 그 삶이말로 인간이 인간이 되고, 내가 내가 되고, 가야 할 길을 가게 하는 가장 온전한 길이기에 그렇다. 오종우라는 성균관대 러시아 문학과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남은 작품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읽어내며,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열어주는 고전의 현재적 가치를 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많은 책들을 냈는데, 2016년 “무엇인 인간인가, 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란 책을 불러내 그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저자는 《죄와 벌》에 그려진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련한 인물들에 주목한다. 마르멜라도프는 성실하고 선량한 가장이었으나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찾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빈민가로 들어왔다.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는 빈곤에 시들어가는 가족을 살리고자 거리로 나가 몸을 판다. 주인공인 법학생 로쟈는 학비와 생활비가 부족해 휴학을 하고 골방에 처박혀 지내며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를 키운다. 로쟈의 누이 두냐 또한 가족을 위해 돈에 팔려가는 결혼을 선택한다. 저자는 이런 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인간다움을 유지 할 수 환경에 처한 없는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그 마음에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어둔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은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보다 낳은 길에 서 있습니까? 아마도 틀림없이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간 됨 품위를 유지하고 살만한 여유가 있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묻습니다. “2019년이 시작 된 새해, 너는 너의 가는 길을 알고 있나?”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자신에게 묻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이 어둠은 무엇인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어두운가, 밝은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웃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아십니다. 웃을 수 없는 현실에 처한 나의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못난 것 같은 자괴감에 우는 울고 있는 나를 아십니다. 다른 집은 행복이 넘치는 것 같은데 우리 집만 늘 답답함과 갈등으로 가득한 어둠이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아파함을 아십니다. 긴 인생을 살아 왔는데 이룬 것도, 남길만한 것도 별로 없는 인생의 깊은 허무에 괴로워하는 우리를 아십니다. 지난 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저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에 갔었습니다. 여러 어른 들, 동네 분들께 인사드릴 때 많은 분들이 위로의 마음으로 맞아주셨습니다. 그 중에 저의 집안, 종가 댁, 첫째 며느리, 저에겐 당숙모가 되시는 분을 뵈었습니다. 이분은 저의 집안에 젊어서 시집을 오셨는데, 육이오 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편께서 뱃속 아기를 남겨 놓고 참전하였다가 전사를 했습니다. 해서 그 후 아기를 낳고 평생 집안 며느리로 긴 인생을 홀로 살아오셨습니다. 눈물 없이는 살 수 없는 긴 인생의 길을 살아 오셨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저를 늘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그 긴 아픔의 세월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른을 뵐 때 저를 맞아주시는데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아버지 돌아가셔서 얼마나 힘들었냐. 얼마나 아팠냐? 네 마음은 다 안다.”는 깊은 애정이 담긴 표정으로 저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순간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금방이라도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그 고뇌와 갈등과 아픔과 눈물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필요한 것은 억지웃음이 아니라, 나의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깊고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그 어둠을 몰아 낼 빛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것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께서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성도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과 같은 어둠, 위기, 절망에 처할 때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지?”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를 인도하시는 분인가?”하고 의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을 언제나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꺼이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기 위해 지나야 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해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길을 가야 할 때는 그 것을 대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인물 중에 구약의 율법적 사고를 뛰어넘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길을 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가 지은 많은 시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편 23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의 인생의 대부분은 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소년시절에는 들에서 짐승들과 싸워야했고, 사울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10년 이상을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늘 전쟁을 치러야 했고,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아들이 죽고, 자녀들 간에 칼부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아내들이 아들에게 욕보임 당하는 비참을 경험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들을 피해 맨발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깊은 사망의 골짜기가 그의 인생의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하고 고백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골짜기를 다닐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 손으로 그를 붙들어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그에게는 사망의 두려움이 임하는 길로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피해가거나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함께 하사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죽이면 모든 것이 쉽게 끝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실 때 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가 피할 수 없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능히 이기게 하셨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인생으로 빛을 발하였습니다. 다윗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게 됨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듯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의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다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인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계심을 믿고 인내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믿음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끝까지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견디고, 한 발을 내 딛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죄와 벌”이란 책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4년 내내 나의 벼개 밑에는 성경이 놓여 있었다. 혼자 성경을 읽을 읽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성경을 읽어주던 때도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책이며, 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인가. 이 성서란 얼마나 고마운 책이며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가? 그리고 이 책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힘을 부여해주는가?” 감옥에서 성서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그는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감옥에서 성서를 통해 비로소 인생의 빛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쓴 후 1881년 1월 28일 6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성경을 가슴에 품습니다. 그는 임종 맞이하는 그 시간 아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4년간의 시베리아 형무소에 있었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성경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밤 11시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시편 119편 10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인생의 깊은 고난 속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성경을 읽었고 그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영혼이 살게 되었고, 그 인생의 길에 비추는 진정한 빛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망 교회 김지철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이 내게 들어오면 내 것이 되고, 나의 삶의 것이 된다.” 성경은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2천 년 전, 길게는 3천 년 전 이상의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책은 너무나 지루한 형식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시작 했다 중도 포기하는 분들, 마태복음에서 시작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내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빛, 내 인생의 여정을 인도하는 빛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시편 기자처럼 깊은 고난의 여정 속에서 내 영혼을 살게 하는 생명의 능력이 있음을 안다면 우리도 도스토옙스키처럼 죽는 순간까지 성서를 가슴에 품고 또 품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극이 있다면 이 성서를 읽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손해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운 것은 환경이 어둡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핵심은 그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마음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요, 그 말씀을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문제 속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독문에도 나와 있듯이 시편 1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단순하게 세상에서 떵떵거리는 그런 복을 넘어, 우리의 인생이 어둠을 몰아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이겨내게 하는 복, 가야할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가는 복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그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일어나면 엄마 아빠를 보고 즐거워하듯이, 우리도 매일 말씀 속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새로운 지혜를 주시고, 갈 길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을 누가 받습니까? 말씀을 통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이 가게 하시는 그 길, 내가 가야 할 그 길만을 걷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치는 사람입니다. 교회문제로 고통의 여정을 걸을 때입니다. 하루하루 점심을 금식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어느 날 아픔 가슴을 안고 기도할 때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중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만 하지 말고 성경을 읽어라” 매일 하루 한 장 성경 읽기를 주보에 내고 있듯이 그날은 시편 46편을 읽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마치고 바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죽 읽어내려 갈 때 한 순간 일거에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신 말씀이 눈에 확들어 왔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이 말씀을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게 되었고, 기다리면 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때 마음이 자유를 얻었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믿고 기다리라는 말씀에 순종 했을 때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둔 사람입니까? 다 어둡습니다. 그러나 밝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간절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치십시오.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사 그 말씀이 우리의 길을 비추시는 생명의 빛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빛으로 우리 안의 어둠을 몰아내사 생명의 빛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