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9(주) 주일예배 본문 빌립보서 1:8 제목 사울의 심장과 바울의 심장(그리스도의 심장) 설교 한용대 협동원로목사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 이시니라.” ‘심장’이라는 헬라어 ‘스플랑크노이스’ 는 심장, 간, 페, 등 인간 내장의 중요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지만 본래는 물질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 마음이나 정서,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마음을 가지고 자신도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큰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지요. 하지만 바울은 원래 ‘사울’이란 과거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적으로 하나의 바울이지만 두 형태의 인생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1. 과거의 사람 – 사울의 심장 사울은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신고하거나 잡아오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행 9:1-2) 그는 유대인 선민 우월주의자였고, 학벌도 최고 명문 출신이요(행22 3), 로마 시민권 자로 세상 권세를 자랑하던 자였고(행 22:26-29) 도를 핍박하였고(행 22:4), 스테반 같은 그리스도인의 형벌에도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행22:5, 20) 다시 말하면 사울은 기독교 극렬 반대자요, 자기 의에 도취되었던 사람으로,교만으로 꽉찬 사람이었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듯 기독교인들의 꼬투리를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간판은 기독교인이면서도, 실상은 변화되지 못한 사울과 같이 자기 의와 교만으로 꽉차고 기회만 있으면 남의 꼬투리만 찾으려는 사울 같은 심장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 큰 기적이 생겼습니다. 저 유명한 ‘다메섹 도상의 중생 체험’ 입니다. 예수님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 울 : 주여 뉘시오니이까? ‘ 예수님 :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사 울 :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예화 : 독일의 유명한 화가 스텐버거는 십자가 상을 그리다가 그림 값 때문에 중단하고 처박아 놓고 돈벌이가 잘되는 누드화를 그렸답니다. 어느 날 누드 모델 여인이 처박아 둔 십자가 상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모델여인 : 저 그림은 무슨 그림인가요? 스텐버거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이지. 모델여인 : 십자가 상이라니요? 스텐버거 : 모든 일류의 죄를 대신지고 간 하나님의 사랑이지. 모델여인 : 그럼 선생님과 저의 죄도 지고 죽으셨겠지요? 그 순간 스텐버거의 마음에 찔림이 왔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누드화를 중단하고 다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완성 시켰습니다. 다시 그린 “십자가 상의 예수님” 이 현재 독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심장으로 살고 있습니까? 과거 사람의 심장입니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거듭난 심장으로 살고 있습니까?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면 사울이 아니라 회심한 바울의 신앙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 새로운 사람 – 바울의 심장 다메섹 도상의 변화로 사울은 바울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 20)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바뀌어진 새 사람, 바울의 고백들입니다. 예화: 닭알(달걀)과 병아리는 다릅니다. 다같이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무엇이 다릅니까? 보지도, 듣지도, 걸을 줄도, 감각도 없는 것이 닭알(달걀)이지만, 병아리는 새 생명의 모습으로 태어나 보기도, 듣기도, 걷기도, 먹기도, 소리도 낼 줄 알고 피할 줄도 압니다. 다행 것은 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인은 말로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거듭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이란 겉 사람을 성형 수술한 자가 아니라 숨은 속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대 수술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격 속에는 새 사람이 숨어 있었고, 숨어 있는 사람이 겉 사람을 지배, 통솔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숨은 사람의 생각, 말,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속에 숨은 사람을 보시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 인 – 나의 심장 거듭나기 전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모릅니다. 제 잘난 줄 알고 타인을 얕보거나 괴롭히는 존재일 뿐입니다. 여러분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어떤 자입니까? 가롯 유다의 속에도 숨은 사람이 있었고 바울 속에도 숨은 사람이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속 사람은 간악한 악마였고, 바울 속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속 사람이 영적인 사람은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자신도 아름답게 완성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이는 Tolstoi 말이요,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이는 P. Tillich의 말입니다. 이 두 말을 합하면 하나님은 사랑 이시며, 하나님이 계신 곳이 교회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던가요?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숨쉬는 곳에서만 사는 자들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랑게(Lange)는 “사랑은 동그라미와 같은 것, 동그라미는 끝이 없다.” 라고 했고 “사랑은 한계를 찾지 않고 출구를 찾는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의하여 “자기”를 만들어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을 지닌 자의 사랑은 견고하고 좋은 인생의 최고 최대의 기초로서 훌륭한 형제와 자매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기도입니다. “저를 비롯한 지구촌의 모든 형제와 자매들이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심장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며, 생을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내가 새로워지는 순간이 덧없이 흘러가 버릴 내 인생이, 참되고 영원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임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내 영혼에 투입 되는 거듭남을, 중생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권리를 취득하는 새 삶을 영위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