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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복음의 능력2019-10-3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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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주일예배

본문 롬 1:13-17

제목 복음의 능력

목적 이시 대에도 여전히 복음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선포하고 진리를 굳게 붙들게 하려 함이라.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자신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인가?”

 

어떤 분들 중에는 그럼요난 구원이 필요합니다.라고 답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어떤 분들 중에는 글세요난 구원이 꼭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했다면특히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 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요그렇구말구요.”하고 답을 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택함 받은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늘 기다리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은 신을 구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구원 받아야 할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그렇기에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내가 왜 구원 받아야지?하고 반문하기 쉽고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를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이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또 다문화를 존중해주고 관용이 최고의 미덕이 된 이런 사회에서 더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저는 2007년 도 3월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 때 제가 겪었던 영적 혼란이 있었습니다뉴질랜드에 오기 전 저는 교회의 부흥과 전도를 위해서 힘을 다하는 교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전도부로 하여금 총동원복음 전도의 날을 계획하게 하고목표를 만 명으로 잡습니다그리고 선물을 만개를 준비합니다그리고 그 마지막 D-day를 향하여 홍보는 물론이고금요심야기도회새벽기도회를 통해 부르짖습니다. “만 명을 주시옵소서!”

 

그러다 여기에 왔습니다그런데 와서 보니 이 사회는 복음을 전해야할 긴박성이란 전혀 없었습니다오히려 너도 훌륭하고우리도 훌륭하니 오순도순 잘 잘살아보자라는 분위기로 넘쳐 났습니다관용으로 존중해주어야 할 대상이지 복음을 전해야 대상구원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혼란이 왔습니다.

이 사회는 오직 예수가 아니네?

오직 예수라고 말하는 것이 민폐스러운 사회네

 

어쩌면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도 제가 경험했던 혼란을 겪었거나지금도 그런 혼란 중에 계신분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꼭 예수여만 하는가?” “꼭 구원이 필요한가?”

 

그리고 이 혼란의 핵심 질문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복음은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정말 복음은 이 시대를 구원하는 능력인가?”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성경으로 돌아갑시다이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답을 주고 계십니다.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길이 막혔도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그러나 가지 못했습니다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했던 이유를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서도 이방인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그는 로마에서도 복음의 열매를 맺고 싶었던 것입니다.

 

14절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합니다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

당시 헬라의 정신과 문화를 이어 받은 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 로마인 이외의 다른 나라와 민족은 야만인이었습니다그러나 바울의 관점에서 볼 때 자칭 훌륭한 자들이라 여기는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로마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야만인으로 부르는 로마 이외의 우리 민족을 포함한 헬라 철학을 모르는 어리석은 민족들에게 까지도 다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아무리 세상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역시 복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아시아마케도냐와 그리스 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이미 그들의 사상과 종교가 넘쳐 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환영하기는커녕조롱하고 비웃고도리어 그를 핍박하고심지어 죽이려 하는 곳에 들어가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16절에서 바울이 그 답을 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가 조롱과 비난을 당해도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무엇이라 말합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할렐루야!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으로 오셨다.

그리곤 십자가에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죄인 된 우리는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기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죄나의 죄 값을 사랑으로 짊어지신 것이다그러나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이 부활을 통해 예수는 한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으로써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오신 진정한 구원의 왕이시오주이심을 드러내셨다따라서 이 예수를 내 구원의 왕내 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 기쁜 소식입니다.

 

즉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진정한 구원의 왕이시오주이신바이 예수를 믿을 때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라는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예수가 구원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구원을 덧입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그것은 구원 받을 자격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뼈 속까지 죄로 가득한 죄인바라보는 것 자체가 구역질 날 그런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그것도 아무런 값없이 말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자기 정적들을 하나씩 둘씩 죽여 나갑니다고모부도 죽입니다그것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사포로 쏴 형체도 찾을 수 없는 모습으로 죽입니다또 자신의 배다른 형도 독가스로 죽입니다누구든지 예외 없습니다김정은에게 잘 못 보이면 가족과 자녀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사포로 쏴 죽입니다얼마나 잔인합니까이런 사람도 새 사람이 될 자격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화성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실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런 극악한 살인마도 새 사람이 될 자격이 있을까요새 사람이 되기는커녕 저주 받아 영원히 격리 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보 양보하여 설령 새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한들 누가 그 죄를 씻어 새 사람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없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죄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인간의 눈으로 죄의 경중을 따질 수 있겠으나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대하여 씻을 수도돌이킬 수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아담의 후예로서 하나님을 떠나고 버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자신의 창조자를 버리고 조롱하고 모욕한 것입니다토기가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를 필요 없다 조롱하고 버린 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사람이 어떤 사람어떤 죄인이냐는 상관 없습니다그 어떤 누구라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나를 살리기 위해 내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죽음이셨고그러나 부활하사 하나님으로 드러내신 예수를 나의 주나의 왕이심을 겸손히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새롭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예수의 죽으심의 값으로 다 용서받아 의롭게 되고그 토록 짓눌렀던 죄책감과 그 고통에서 자유케 되고거룩한 새 마음과 새 양심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할렐루야!

그래서 복음즉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안에 구원이 있다는 이 복음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과의 만남의 토대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고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는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아무 죄도 없는 성자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을 비롯하여스스로 벗을 수 없는 모든 인간들의 죄 값을 자신의 죽음으로 치룬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교리적인 깨달음이 아니라성자 하나님께서 그 모진 조롱과 치욕의 십자가 처형을 달게 받으신 것은 우리를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구원 받을 자격이란 눈곱만치도 없는 죽어 마땅한 원수인 우리를 위한 예수의 그 깊고 깊은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바울은 이처럼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히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순종하심 속에서 무한한 주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고 또 경험 한 것입니다.

 

이에 그는 이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다 드려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합니다인격의 감화가 일어난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의 일생의 소망이 무엇입니까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오직 예수를 사랑하고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씁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은 것도 유익함이라”(1:20-21)

 

바울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예수를 사이비라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던 자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속사람까지 변하여 오직 예수가 드러나기만을 바라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이렇게 믿고 새 사람이 되어 복음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합니다.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할 때 였습니다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유대에서 와서 바울의 띠를 가지고 자신의 손과 발을 붙들어 매고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그러자 바울과 함께 있고 같이 있던 사람들도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 권합니다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 붙잡힐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그러자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0-13

 

바울의 심장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예수를 위해 결박당하고 죽는 것도 각오 했다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사랑으로 죽으신 예수그러나 나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가 나의 왕나의 주이심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주를 따를 때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죄와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자유그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이 되는 능력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또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죄로 망가진 인생이 새롭게 되고죄의 열매로 고통 하는 이 세상이 새롭게 되는 진정한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내를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길자녀들을 바르게 세우는 부모가 되고이웃을 정의와 사랑의 길을 가는 새 사람이 되는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예수 복음에 있는 것입니다할렐루야!

 

감옥은 어떤 곳입니까? 죄에 대해서는 뼈저리게 느끼고그 죄의 값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값을 치루는 곳입니다그래서 감옥 만큼 죄의 무서움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곳도 없습니다그런데 이런 곳에 복음이 들어가면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성령의 역사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를 지어 감옥에 올 정도면 인생은 실패한 것이 마찬 가지입니다사회적으로도 매장이 됩니다그곳에 남은 것은 절망이고혹은 더 대담한 범죄자가 되어 끝 발을 날려보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용서받고 새롭게 되는 복음이 임할 때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심리적 효과가 아닙니다나 같은 몹쓸 죄인도 용서하시고 새 사람 되게 하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의 실제 사건입니다그래서 교도소에 복음이 들어가면 교도소는 어느새 어느 교회보다도 뜨거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할렐루야!

 

그러나 세상은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그리고 많은 종교들이 훌륭한 선행의 길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해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에게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6:54)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를 살려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이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즉 예수를 믿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만이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이것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여기에 죄로 죽어 마른 뼈가 같은 영혼이 살아나고 새 삶을 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왜요?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이신 이 복음이 이루어지게 하는 영원한 보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할렐루야!

 

소경인 바디매오가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필시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께 대한 많은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병자를 고쳐주시고귀신을 내어 쫓고않은 뱅이를 일으키는 예수의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필시 그는 예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분이야 말로 나를 새롭게 하실 분이다나의 이 절망의 병에서 건져 내주실 분이다” 라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그렇기에 그는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하지만 소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리 질러 간구합니다이에 예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제자들이 그를 이끌어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에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께 나아갑니다자신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는 순간이기에 옷 벗어던지고 예수께 나갑니다마침내 예수께서 그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은 답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직장명성이 아니었습니다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보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예수께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씀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러자 그 소경은 즉시 보게 됩니다그리고 예수를 따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절망이라는 죽음에서 그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할렐루야!

 

그렇습니다복음은 여전히그리고 영원히 이 어둠의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복음만이 어둠을 걷어낼 수 있고또 봐야만 할 생명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께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 원하느냐

그리고 답을 주십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여러분은 응답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다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제 어둔 눈을 열어 주사 생명의 빛이신 주 예수나의 왕을 믿고보게 하소서내 안에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춰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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