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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희망의 신앙2019-10-3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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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종교개혁주일

본문 눅22:39-46

제목 희망의 신앙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은 신앙의 모습으로 세상에 희망

을 주는 성도교회의 길을 가게 하고자 함이다.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무명의 청년 수도사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선언문을 붙였습니다이 선언문은 당시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이 선언문을 통해 종교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5대 원리는 Sola Fide(오직 믿음), Sola Gratia(오직 은혜), Sola Scriptura(오직 성경) Sola Christo(오직 그리스도) Sola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로써 성경보다 더 권위를 부여했던 교회와 교황의 권위 바로 잡았습니다성경이 신앙과 교회와 전통의 모든 권위에 우선하며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는 모든 권위전통은 다 폐기 됩니다.

 

또 롬 1:17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에 더하여 선한 행위와 공로를 쌓아야 한다는 율법적 구원관을 깨뜨립니다대신 십자가와 부활과 다시 오실 구원의 왕이신 주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구원을 덧입는 성경적 구원관”을 확립합니다.

 

이러한 종교개혁 정신에 또 한 가지 빠트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바로 만인사제론입니다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용서를 하며 그 이외에 다른 중보자나 중보적인 역할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성인 추대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는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이며교황과 같은 구약의 대제사장 형태의 직제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누구라도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개혁교회의 성직자즉 목사는 죄를 사하고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이 아닙니다목사는 교회의 예배친교교육선교봉사를 책임지고성경과 사도들이 전한 신앙을 가르치고 양육하며 교회를 수호하는 직무를 맏은 자그에 따른 권위를 부여 받은 교역자로 규정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또한 목사의 지도를 받아 하나님 선교를 위해 세움을 입은 교회와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을 직무에 따라 섬기도록 부름 받은 교역자입니다.

 

나아가 교회의 직무가 거룩할 뿐만 아니라하나님께서는 일반성도들이 매일의 삶속에서 수행하는 직업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직무로 보았습니다교회의 사제뿐 아니라모든 성도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행하는 성직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벗어나지 않는 모든 직업이 다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하나님은 그 직업을 통해 성도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이는 교회로어떤 이는 가정으로일터로학교로 부름 받고보냄 받은 거룩한 성직자들입니다할렐루야!

 

이렇게 종교개혁은 율법적 구원성경보다 우위에 있는 교권성속의 이분법적 차별에서 자유케 한 위대한 개혁이었습니다진정한 신앙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개혁의 산물이 바로 개혁교회의 출현이요그 위대한 개혁의 전통을 이어 받은 교회가 바로 우리 교회이고한국의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우려하고 걱정합니다왜 그럴까요?

교회가 위대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복을 받기 위한 신앙으로 변색 된 모습,

구원을 위한 순수한 전도와 이웃을 위한 순수한 사랑이 아닌

목회성공교회성장교권 확장을 위한 탐욕으로 전도와 봉사를 타락케 한 모습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지워 버렸습니다.

 

목사는 목사직을 세습하고영적 지도자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세속의 정욕에 물들어 영적· 육적으로 타락해 나태한 모습,

성도는 명예를 위한 신분으로서 직분을 탐하고

주일만 신자로 살고 평일엔 주 없이 사는 방탕한 모습들이

거룩한 신앙과 믿음의 진정함을 지워버린 모습입니다.

복음의 거룩함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하나님의 영광에 걸 맞는 교회 세상에 희망을 주는 진정한 신앙의 빛을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요그 길은 주님이 몸소 보여 주신 신앙의 본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를 버리는 신앙입니다.

요즘 어디에서 자기를 버리는 신앙을 볼 수 있을까요?

성도는 자기 복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에 머무르고,

믿음 있다하지만 여전히 자기를 버리지 못한 악취가 가득하고

조그만 힘들어도 불평과 불만으로 입이 십리는 나와 있고,

목회자는 성공을 위해 성도를 이용해 교회를 성장시키려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대로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탐욕의 노예가 되고교회를 개혁하려고 한다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는 자 또한

자기의 의로움을 과시합니다다 자기를 버리지 못한 모습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눅 9:23)

자기중심의 감정생각마음탐욕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오늘 말씀에 그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십니다본문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날목요일 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십니다일생에 가장 깊고 깊은 고뇌와 아픔의 시간을 대면하며 자신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사야 선지서의 예언대로 메시야그리스도로 오신 고난의 종 예수는 죽기 위해 왔습니다각기 제 길로 간 양들의 죄 값을 대신하여 자기 생명으로 지불하기 위해 오셨습니다그토록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큰 사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시나동시에 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만인 앞에서자신을 따랐던 사람들 앞에서어머니 앞에서벌겨 벗긴 채 십자가에 못 박혀 메달리는 치욕과 고통하나님께 저주 받아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림받아 죽임당해야 하는 그 처절한 고통의 십자가를 앞두고 괴로워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그 엄마에게아빠에게 버림받는다면 그 자녀는 얼마나 아프고 무섭고 외로울까요그 아픔보다 더 아픈 고통이 어디에 있으며그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도 아팠습니다참을 수 없이 견딜 수 없이 아팠고 괴로웠습니다이 주님의 마음이 이 기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버지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한 인간으로서 겪는 아픔과 고뇌 속에서 십자가 고통의 잔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자신의 길이 마땅히 십자가의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주님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만큼 그 길은 형언 할 수 없는 고난의 짐이었습니다얼마나 괴로웠으면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드렸을까요?

 

44절에서는 이렇게 그 때의 모습을 누가는 이렇게 전해줍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살다보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때가 있습니다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독에 쌓여홀로 괴로움에 던져져 고통 할 때 생명을 건 싸움곧 기도로 자신과 그리고 하나님과 합니다죽음보다 더한 고뇌를 안고 생명을 건 영적싸움을 합니다조롱당하고 죽어야하는 현실 앞에 자신을 등신처럼 내어주는 그 수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처절한 싸움의 기도를 통해 바보처럼 자신을 버립니다그리고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한 대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입니다자신을 버려야 하는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무엇입니까? 주님처럼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입니다.

자신을 버린 주 예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 받아야 할 그 비참한 죽음의 형벌을 우리 대신 받아듭니다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줍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가르치신 대로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당시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의 죄까지 대신하여 못 박혀 죽어가는 자리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조롱하며 못 박는 원수들까지도 바보처럼 사랑합니다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그리곤 마침내 다 이루었다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우리를 사랑한 사랑의 댓가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진정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병자들을 고쳐 준 기적에 있습니까?

보지 못하는 불쌍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해준데 있습니까?

죽은 나사로를 살려준 기적에 있습니까?

맞습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도 주님이 마지막 순간,

자신이 등신 같이 비참한 죽임을 당해야 할 순간에 자신을

버리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죄도 없음에도 자신의 모든 자존심 명예 생명까지도 버리고 바보 같이 그 처절하고 비참한 십자가의 형벌을 짊어지며 자신을 버린 사랑에 예수의 진정함이 있습니다이 진정함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이 원수인 우리도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우리에게 회복 되어야 할 참 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우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뜻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생명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처럼우리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그렇게 보여 주셨습니다.

 

[1941년 7월말 폴란드 아유슈비츠 수용소 14동에서 포로 하나가 탈출했다친위대가 출동해서 도망친 포로를 찾았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다이에 14동에 수용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탈출자가 24시간 안에 잡히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소속된 14동의 수용자중 다른 열 사람이 대신 죽어야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수용소 소장이 일렬로 늘어선 수용자들 중에 처형시킬 사람들을 골라냈습니다그러자 그 때 수용소장에게 지목된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제발절 살려 주세요!! 내겐 노모가 살아계시고아내가 있고자식들도 있다구요제발..." 그는 전 폴란드군 부사관이었던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첵크였습니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이 소장 앞으로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그는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가톨릭 신부였습니다소장은 이를 받아들여 가조우니첵크의 이름을 사형수 리스트에서 지우고 대신 콜베 신부 이름이 올렸습니다.

 

이후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Maximilian Maria Kolbe, 1894~1941) 신부를 포함한 10명은 굶어 죽어야 나올 수 있는 아사감방(餓死監房)으로 보내졌다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아사감방에서 울부짖는 죄수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었다그러나 콜베 신부와 함께 있는 죄수들은 누구도 저주하지 않고 비록 힘이 빠진 목소리지만 기도하고 찬송을 할 뿐이었다콜베신부가 자신도 버티기 어려운 그 상황에서도 그들을 위로하고 끊임없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2주가 지나자 겨우 네 사람이 살아남았는습니다이에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던 소장은 남은 자들에게 독약 주사를 놔 죽입니다결국 뼈 밖에 남지 않은 않았지만 여전히 목숨이 붙어 있던 네명 중의 한 명이던 콜베 신부도 그렇게 1941년 8월 14일 숨을 거둡니다.

 

그 뒤로 30년 뒤 1972년 10월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15만 명 유럽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동료 죄수를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친 한 사람콜베 신부를 기념하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그 자리에는 백발의 노부부가 있었습니다남편의 이름은 가조우니체크 였습니다콜베 신부의 죽음으로 대신 살게 된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그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 생명만을 갖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내 안에는 콜베 신부님의 생명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콜베 신부의 마지막 설교 자리는 모두가 죽음 앞에 떠는 수용소였고그의 마지막 설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자신의 생명을 주는 사랑 이었습니다이 진정한 신앙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9:24)

 

신앙의 진정함은 어디에 살아 있습니까오직 그리스도의 삶을 진정으로 본 받아 사는 삶에 있습니다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진정한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내 생명보다 더 중하다는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의 설교단은 이 곳이나이제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설교단에 서게 됩니다. 그 설교단은 월요일 아침부터 열리는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세워진 설교단 입니다우리는 그 거룩한 일터의 설교단에서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요주님처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먼저 이웃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의 설교가 울려 퍼져야 할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세워지는 가정과 일터라는 거룩한 설교 강단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갈 때 세상은 진정한 신앙의 참 모습세상을 살리는 희망의 신앙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길을 기도로 걸어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기 위한 그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고, 마침내 그 길을 가셨습니다.

 

먼저 그 길을 가신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성령으로 도우사 능히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를 믿음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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