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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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사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엡 5:22-6:4)2007-08-04 10:10
작성자 Level 10
“사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엡 5:22-6:4 / 20070506)

최신 한국영화를 보면, 가족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 지 보여주는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설가 공지영 씨의 작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각색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와 가수 출신의 여교수가 만나 삶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고 행복을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관계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공료롭게도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형수가 된 윤수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엄마에게 버림 받고 고아원에 살았습니다. 동생과 함께 엄마가 사는 곳까지 찾아가서 어렵게 엄마의 얼굴을 보았지만, 엄마는 그만 나중에 찾아갈 게 라는 말만 남긴 채 창문을 닫았습니다. 교수가 된 정선은 학생 시절, 사촌 오빠에게 순결을 빼앗긴 뒤 엄마에게 말했으나, 어떤 위로도 못 들은 채, “입 꼭 다물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아픔 때문에, 가서는 안될 길을 갔고, 살인까지 했습니다. 그 아픔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은 채로 사람들에게 삐딱했습니다. 엄마가 빨리 죽었으면 하고 표현합니다. 여느 교수와는 틀리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똑같이 바라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어서 법에 의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자살을 몇 번이나 시도합니다.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선은 수녀인 고모의 부탁으로 면회를 갔고, 이 두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만남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습니다. 불같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뭍어둔 이야기, 창문을 닫아버린 어머니, 입 다물라고 챙피하다고 말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고, 이것은 서로의 공감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마간,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만났습니다. 그들은 어느덧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사형수 윤수는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었는지 깨닫고, 죄책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죽인 여자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는 울며 “잘못했다”고 울먹였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교수 정선은 윤수의 사형집행 결정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 때문에 혈압으로 쓰러진 어머니 병실을 찾아갑니다. 어머니는 본채 만채 여느 때처럼 막 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정선은 울면서 말합니다. “엄마, 죽지마”. 이 장면에서 저는 어머니와 딸 사이에 놓인 담이 무너지고 다리가 이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정에서 맺어질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관계, 남자와 여자(부부)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친절하게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각각 그 대상을 부르며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5장 22절의 아내들이여, 25절의 남편들아, 6장 1절의 자녀들아, 4절에 아비들아(부모들아) 라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각 대상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내되시는 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아내되시는 분들만 22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아멘입니까? 아멘 소리가 작네요.

그 다음, 남편되시는 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남편되시는 분들만 2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아멘입니까? 아까보다 더 작네요.

자, 그러면 이번에는 모든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 읽겠습니다. 자녀되시는 분들만 6장 1절과 2절 상반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아멘입니까?

마지막으로, 모든 부모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4절입니다. 부모되시는 분들만 4절 말씀을 읽으십니다. 시작,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멘입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받는 말씀은 참 귀한 말씀,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못마땅한 말씀, 실생활과 동떨어져서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기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관계와 가정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말씀대로 살게 하는 힘이 말씀과 말씀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아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혹시 복종이란 말이 좀 듣기 거북하신가요? 아내에게는 복종이라고 말씀하시고, 남편에게는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왠지 힘의 균형이 깨지는 듯해서 좀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에게도 복종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 않았습니다마는, 21절 말씀을 보시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무슨 말씀입니까?

여러분, 왜 그리스도가 우리의 경외할 대상일까요? 그분의 사랑이 너무나 높아서입니다. 너무나 커서입니다. 너무나 깊어서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서로 말씀 앞에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먼저여야 하는가는 없습니다. 아내는 오직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남편은 오직 “r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느 쪽이 더 쉽고 어렵고가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서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복종하고 사랑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자녀들은 어떻게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까? 또,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 양육할 수 있습니까? 순종하자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기분 좋게 가르치자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쇠를 주십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순종하라... 이 해석에 더하여 오늘 저는 새롭게 보고 싶습니다. “사랑 안에서 순종하라”. 왜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딪힐 경우에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우리는 분명히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인간적인 반발심에서 순종하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자녀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으로 하시는 말씀이기에 우리는 그 사랑을 깊이 마음에 담아야 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주시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작정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고 양육하는 권위를 부모가 가졌습니다마는, 그 권위는 “주의 교양과 훈계” 안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늘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차가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차가울지라도, 따뜻함이 있는 차가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성장/성숙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따뜻함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적절한 가르침과 안아줌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묘약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가정을 정말 사철에 봄바람 부는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사업에 성공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교회를 위한다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옳은 일입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가정을 위하여는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큰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적지 않은 노력을 가정에 쏟아야만 합니다. 가정에 관한, 남편에 관한, 아내에 관한, 자녀들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가정세미나가 있다면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 일이 없다고 행복한 가정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가정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가정을 생각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려면, 가정 안에 있는 관계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속에 늘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있어야 남편에 대한 복종도, 아내에 대한 사랑도,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도, 자녀에 대한 양육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가정의 행복을 창조하고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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