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배와 말씀

PRESBYERIAN CHURCH

금주의 말씀

제목"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잠 4:20-27)2007-03-21 15:23
작성자 Level 10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0-27)

한 어머니가 먼저 아들 집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집에서 저녁 시간을 맞으면서 이 어머니는 감격했습니다.
며느리가 음식을 준배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함께 앉았습니다. 그런데 식탁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아들이 아닌 며느리였습니다. 아들은 한쪽에서 아이 우유를 주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날 밤 이 어머니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감히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겸상을 하고 내 아들에게는 우유병을 쥐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는 며느리가 보기 싫어 짐을 싸서 딸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이 저녁을 준비하고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딸은 어머니 앞에 앉아서 식사를 했고, 사위는 우유병을 들고 손자에게 우유를 먹였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사위가 아주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사랑스럽고 자상한 남자가 있단 말인가. 내 딸을 이토록 사랑해 주다니.’ 감격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두 집 다 남자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였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극과 극입니다. 이렇듯, 마음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이라 할 때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생각과 언어, 감정을 지배하는 중심기관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체에서 찾는다면, 뇌부분이 마음입니다.

뇌는 1.1kg의 젤리같은 덩어리로 두개골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약 100억-1000억개에 이르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작고 미세한 뇌가 인간의 전영역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뇌가 바로 마음입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분출시킵니다.
생각합니다. 분석합니다. 결정합니다. 우리의 몸을 움직입니다. 이렇게 행동은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합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는 때로 돈을 지킵니다. 또는 건강을 지킵니다. 자존심을 지킵니다. 명예를 소중히 다룹니다. 심지어는 누가 내 기분을 해칠까봐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이 들어와서, 삶이 깨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 얼마나 지킬 것이 많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많은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을 마음에 담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고 복을 주십니다.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최고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음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는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건강의 비결이 마음에 있습니다. 의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일찍이 “마음만큼 위대한 의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은 질병이 없는 상태보다는 평강을 의미합니다. 성경 잠언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또한, 행복의 비결이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마음의 행복입니다.

나폴레옹은 모든 인간이 탐내는 것을 소유했지만, 세인트 헬레나에서 “나는 단 일주일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볼 수 없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고에 시달렸던 헬렌 켈러는 “나는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제일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런 것은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은 외적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마음에서 생깁니다.

또한, 형통의 비결도 마음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교만한 마음은 패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6장 32절에 보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는 구체적인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마음을 지키려면 입을 지켜야 합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궤휼이란 사실을 왜곡하는 말입니다. 사곡이란 남을 속이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18장 20~21절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내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첫째, 그 말 듣는 사람이 죽습니다. 둘째, 험담의 대상이 죽습니다. 셋째, 더 중요한 것은 험담하고 있는 나 자신이 죽습니다.

어두운 말, 부정적인 말, 더러운 말을 하지 말 것은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험담을 하면 내 마음이 황폐해지고 맙니다. 그리고 잘 되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인생이 삐뚤어져나갑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로 그 사람의 인생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이 하는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수들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수들은 자신이 부른 노래대로 인생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차중락씨를 아십니까? 연세가 있으신 분은 아실 겁니다. 이분은 ꡐ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ꡑ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로 29세에 낙엽을 따라 가버렸습니다.

중년의 나이 정도 되시면 이분을 아실 겁니다. 1985년에 김정호씨가 ‘님’을 불렀습니다. 가사 중에 <간다 간다 나는 간다>가 있습니다. 그러더니, 34세의 나이에 진짜 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알아맞춰보세요. 1972년에 데뷔했습니다. 데뷔곡은 ‘세월이 약이겠지요’ 누구일까요? .......... 송대관씨입니다. 이분이 어떤 노래 불렀는지 아시죠?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제목은 ‘해뜰날’입니다. 그런데 정말 세월이 약이 되고 해가 떠가지고,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건 중요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잘 불어야 합니다. 노래는 부르는 대로 됩니다. 왜요? 마음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혼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시려거든 사랑의 노래, 희망의 노래, 기쁨의 노래를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이 말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천사의 말, 기쁨의 말, 행복한 말, 위로의 말, 사랑의 말, 창조적인 말, 긍정적인 말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지혜, 입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둘째는, 눈을 지켜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눈을 ‘아인’이라고 합니다. 이 ‘아인’이라는 말은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샘’,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본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모든 경험의, 또 지혜의 샘이요 원천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보느냐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Francois Aguste Rene Rodin ; 1840~1917)이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하는 데, 산을 오르는 중 길 한복판에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고 친구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댕은 그 바위를 바라보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돌을 갈고 닦아 유명한 작품 ꡐ생각하는 사람ꡑ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던 바위가 그를 세계적인 조각가로 성공시켰습니다. 친구들은 무심히 보고 지나갔지만 로댕은 그 돌에서, 생각하고 고뇌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하고, 보아도 그냥 지나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의미를 깨닫고 올바른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갈 수 있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고,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마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눈을 가리켜서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이죠. 눈이 어두우면 그 생활 전부가 얼마나 어둡겠느냐, 밝히 보고 밝게 깨닫고 밝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흐린 눈이 있습니다. 혹은, 나쁜 눈도 있습니다. 그럼 왜 흐려지고 나빠졌습니까? 무엇엔가에 의해서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못 보고, 깨닫지 못합니다.

스위스의 교육가 페스탈로치(Johann H. Pestalozzi ; 1746~1827)는 ꡒ눈이 밝으면 전신이 밝다. 그러나 눈이 어두우면 전신이 어둡고 그 하는 일도 모두 어둠에 속한다.ꡓ라고 말했습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 질투에 눈이 어두운 사람, 잘못된 경험에 눈이 어두운 사람, 특별히 걱정과 근심에 매여 있는 사람은 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 곧은 것을 곧게 보지 못합니다. 환하게 열린 길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한쪽만 보는 눈이 있습니다. 편시입니다.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합니다. 새는 보는데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은 못봅니다. 넓은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의 솜씨를 못봅니다. 역사는 보는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못봅니다. 이 편시가 마음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겁니다.

또한, 두 마음으로 봅니다. 복시입니다. 둘이 하나로 보이고, 하나가 둘로 보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려고 하니까 다 못보고 마는 겁니다.

볼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봐서 안됩니다. 안 봐야 할 것은 얼핏 눈에 보이더라도 빨리 고개를 돌려서 안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은 마음의 창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은 마음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또 생활을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은 말씀합니다. “네 눈을 바라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피라.” 나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바르게 보고는 있습니까? 똑바로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말씀 26-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26~27)

발은 그 사람의 행동을 말합니다.
행동을 신중하게 해서 죄악이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신명기 5장 32~33절 말씀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실천입니다. 행동입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n ; B.C. 428 ~B.C. 347)이 한번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비판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고 조롱하는 데도 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제자가 플라톤에게 ꡒ선생님, 왜 변명을 하지 않으십니까?ꡓ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플라톤이 대답하기를 ꡒ그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을 종결시키는 것은 나의 변명이 아니다. 그들의 비난을 침묵시키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올바른 행동이다.ꡓ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최종적으로 판단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입니다. 변명한다고, 해명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사느냐 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8장 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특별히 오늘 말씀은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습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꾸 죄를 짓게 되면 내 신앙적인 체질이 악의 타성에 젖어 버리고 맙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해집니다. 이것이 두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우로 빗나가지 말고 죄악으로부터 우리의 발길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려면 우리 마음이 정원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임스 알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정원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계발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황폐해진다. 그러나 계발하든 방치하든 인간의 마음은 열매를 맺어야 하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살아가면서 배운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과 정원은 가꿀수록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정원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입니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 중의 하나입니다.
저자인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이 책에서, 마음의 정원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합니다.

“내면의 정원은 섬세한 곳이어서 잘 가꾸어지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가시덤불들이 제멋대로 자라날 것이다. 하나님은 난잡하게 어지러워진 정원을 거닐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소홀히 내버려둔 내면의 정원이 공허한 이유인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지키는 지혜가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입을 지키고, 눈을 지키고, 발을 지키면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