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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섭리를 믿는 자의 복” (행 28:1-15, 2004.11.07)2007-03-21 15:21
작성자 Level 10
“섭리를 믿는 자의 복”  (행 28:1-15, 2004.11.07)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19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드워드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던 Edward Murphy 2세의 경험을 토대로 생겨난 말입니다.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는 이상한 일이 꼬일 때는 안 좋은 쪽으로만 법칙처럼 전개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지나칠 때는 자주 오던 버스도, 막상 타려고 기다리면 잘 오지 않습니다. 큰 맘 먹고 세차하면, 세차 후에 꼭 비가 옵니다. 급해서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면 빈 택시는 반대편에만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맞은 편으로 건너가면 먼저 있던 쪽에서 택시가 자주 옵니다. 보험에 들면 사고가 안 납니다. 그런데 깜빡해서 보험 만기일을 넘기면 꼭 사고가 납니다.

모두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통제불능의 사건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에는 머피의 법칙에서 언급하는 것과 같은 예상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법칙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어떤 불행의 자리에서도 승리자로 역전시켜 주십니다.
안 좋은 일도 복되게 바꾸어나가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법칙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Providence라고 합니다. ‘미리 앞서 본다’는 뜻인데, 좀 더 실제적으로는 ‘미리 계획해 놓으신 대로 실행해나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운명이나 팔자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진행되어가기 때문입니다.

1964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는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33장으로 요약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과 영국의 신앙기준이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극하신 지혜와 거룩하신 섭리로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의 행위들과 생각들을 보호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리하시며 다스리신다“

혹시 요즘 어떤 일들이 자꾸 꼬여서 혼란스럽고 마음 상하신 분이 계신가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묻고 싶으신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보이지는 않지만, 오늘도 내 인생을 이끌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와 그에 응답하는 신앙, 그리고 그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목숨을 건진 것입니까? 풍랑입니다. 그 상황은 27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죄수 아닌 죄수 바울을 포함하여 276명을 태운 배가 로마로 향해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풍랑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큰 풍랑이었는지, 배가 파손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서야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섭리란 무엇입니까?
바울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마 그 배에 바울이 타고 있지 않았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섭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참,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스럽습니다.
그 배에는 백부장도 있었고, 선주도 있었고, 선장도 있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쇠사슬에 묶인 죄수 바울이 끼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고, 배가 거의 파손되기 직전이 되니까, 모두가 바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백부장도, 선주도, 선장도 다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존중합니다. 하라는대로 다 합니다. 풍랑을 겪으면서 바울의 인물이 달라졌습니까? 그의 자리가 승격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모두가 제자리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풍랑을 겪으면서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겁니다. 저들의 신앙이 아직 바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시고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죄수입니다마는, 실제로는 선장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한 섬에 도착했는데, 바로 그 섬이 오늘 말씀에 소개되는 멜리데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 겨울이거든요. 생명은 건졌지만, 이제는 양식도 필요하고, 집도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2절에 보니까,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데 조금 전까지 풍랑과 사투를 벌인 바울과 그 일행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난처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에 넣었더니 뜨거운 기운 때문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서 사도 바울을 물었습니다.
지금 바울의 손에 뱀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본 토인들이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정의가 용납하지 않는구나. 정의의 신이 바울을 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다음 말씀에 보니, 바울이 뱀을 털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뱀이 물었으니까 독이 들어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6절에 보니까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 토인들은 바울이 퉁퉁 붓거나 독이 올라서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잔뜩 기다렸는데, 웬걸요?, 바울이 안죽는 것입니다. 안죽으니까 토인들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 여러분, 살인자가 신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왜 토인들이 바울을 향해서 신이라고 말했을까요? 바울이 평안하니까요. 분명히 뱀이 물었는데도 무사하니까요.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 기적이란 죽었다가 살아야만 기적이 아닙니다. 안죽는 것도 기적입니다. 무슨 굉장한 일이 있어야만 기적입니까? 무사하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 교회에 나왔습니다.
이게 보통 어려운 걸음입니까? 하기야 걸어오신 분은 몇 분 안계시죠?
모두들 차를 타고 오셨을 것입니다. 저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다른 사람이 잘못하면 사고는 난다”.

하루하루가 무사한 게 기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뱀에 물렸다가 무사한 것도 기적이지만, 안물린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야겠습니다. 건강한 것이 기적이고, 무사한 것이 기적이고, 평안한 것이 기적입니다.

조금 더 영적으로 생각해보실까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보니까 걱정을 안하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걱정을 안해요. 죽을 지경인데도 평안해요. 잠시도 평안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아주 평안해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 마음이 열리고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여러분, 이것이 기적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위력이라는 겁니다. 신앙인은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고요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믿는 하나님을 그 사람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야 전도가 되지요. 선교가 되지요.

우리가 왜 바울을 위대한 사도라고 말합니까? 3번에 걸쳐서 전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까?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회를 많이 세웠기 때문입니까? 예, 그것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을 가리켜 위대한 사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3번에 걸친 전도여행을 가능케 했던 신앙의 위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경륜을 믿는 신앙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풍랑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다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27장 22절 이하에서 275명의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삽니다. 어제 밤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잘못 들었다고 생각해서 기억하지 않거나, 무서워 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상황에서 전전긍긍했더라면, 어땠을까요? ... 바울은 “너는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신앙으로 붙들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뱀에 물리는 것도 하나의 섭리입니다. 물리고 무사한 것도 섭리입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들려오는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다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있어야 했던 사건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바울 일행은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나게 됩니다. 특별히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보니,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보블리오나 그 아버지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참 타이밍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마치 바울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냥 지나갈 수 없습니다. 8절에 보니까,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 바울은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고보서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또 온 마을의 환자들이 다 몰려옵니다. 바울은 또 그 환자들을 다 고쳐줍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이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후한 예로써 대접하고, 바울 일행이 떠나는 배에 쓸 것을 올려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고난 속에서만 알고 깨닫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형통할 때는 몰라요. 건강할 때는 몰라요. 감사도 없고, 고마움도 없고, 신앙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라는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또 이 사건들을 보고서야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듣고, 깨닫습니다.

우리는 또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왜 있어야 할 것 같습니까? 왜 가난이 있고 질병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방법입니다.

바울이 풍랑을 겪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된 바울의 위상이 높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필이면 276명이나 되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울이 뱀에 물리는 것입니까? 하지만 바울이 물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됨을 증거하게 되지 않습니까?

또, 하필이면 가장 높은 사람의 아버지가 이 때에 병에 걸리는 것입니까? 그러나 사실 이 병에 꼭 걸려야 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왜 있어야 하느냐고 우리는 묻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 섭리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 무엇인가 이루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3개월이 흘러서 바울 일행을 태운 알렉산드리아 배가 드디어 로마로 향합니다. 로마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서도 바울은 형제들을 만납니다. 이들이 벌써 바울의 소문을 듣고 있다가 찾아와서 만난 것입니다. 또,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에, 15절에 보니까, 아주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아멘.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사례했습니다. 사례라는 말은 감사라는 말입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마는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긴 여행에서 있었던 불안은 이제 다 사라지고, 안도하는 마음으로 그는 로마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특별히 모든 일이 사람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바울은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함께 갑니다. 그리고 감사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겁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는 겁니다. 감사 안할 수 있습니까? 찬양 안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신비한 것은 감사하는 순간, 담대한 마음을 얻습니다. 바울의 미래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제 다시 앞의 일을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관계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미래가 열리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깨닫는 사람은 현재에 감사할 수 있어요. 현재 내게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은 미래의 것을 걱정하지 않아요. 무엇입니까? 평강입니다. 이게 은혜요, 복이 아닙니까?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가르쳐주십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 하나님이다.” - 과거에 너희를 애굽에서 건지신 그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시는데 무슨 걱정을 하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걱정할 때마다 애굽에서 어떻게 건지셨는지, 그것을 줄기차게 일깨워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 하나님의 섭리가 확실하고, 그것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미래의 문제는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과거에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현재와 미래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날로그 시계의 톱니바퀴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서로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 모든 톱니바퀴는 시계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정확한 시간을 표시해줍니다. 반대로 가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 속에서도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대방향으로 어긋나게 진행되어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복된 섭리의 톱니바퀴가 오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내 뜻대로 된 일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대로 될 것입니다. 확실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꼭 붙들고 있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담대해지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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