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6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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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왕, 나의 주인, 예수님!” _x000D_
(눅 19:28-40)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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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가 섬기는 주인, 그가 섬기는 왕만큼 영광을 얻으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알게 모르게 사람은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섬기면서 삽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누구를 섬기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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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주, 영어로 Lord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왕이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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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 나라의 왕이 대관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에 새끼 나귀를 타는 것이 풍속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권력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호산나, 호산나 하고 외치면서 뒤를 따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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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왕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처럼, 오늘 예수님도 그렇게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왕은 왕관을 쓰러 올라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러 올라가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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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나귀를 타고 뒤뚱뒤뚱 발이 땅에 닿을랑 말랑 하면서,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하여 올라가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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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예수님께서는 먼저 승리하시고 십자가를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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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걸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9장 51절에도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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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기에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처절한 싸움 끝에 간신히 얻어낸 승리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승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먼저 승리하시고나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올라가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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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수님께서는 왕의 권세를 행사하셨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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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제자 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맞은 쪽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하십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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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이상히 여겼을 것입니다. “왜 남의 것을 무작정 끌고 오라 하시나?.” 그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혹시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하고 말하여라.”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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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것은 절대권력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당장에 고소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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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소 사건에 없는 것을 보니까, 아마도 그 나귀의 주인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 병 고침 받은 사람인 줄도 모릅니다. 그 또한 메시야,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는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군소리 없이 내놓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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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장면을 연상해보시면서, 제목을 한 번 붙여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충성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내어놓아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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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의 숙제는 이것입니다. 내 것을 어디에 쓰시기 원하시는지, 주님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야, 나의 건강, 나의 물질, 나의 자리, 나의 성적, 나의 지식, 나의 능력을 주님의 뜻, 주님의 목적, 주님의 나라, 주님의 계획, 주님의 마음에 맞는 곳에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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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주님이 오라고 부르시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이 세상에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고, 내 것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의 주인이시오 왕이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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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예수님께서는 모든 오해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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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것은 정치적으로 오해받기에 충분한 장면이었습니다. 로마의 절대 권력이 세상을 흔들던 때였습니다. 왕의 대관식 같은 퍼레이드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없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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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새끼 나귀를 타고 올라가십니다. 정치적인 오해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셔야만 했던 이유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오해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고, 당당하게 밀어부쳐야 했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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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해오셨지만, 이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어떤 오해도 신경쓰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거침없이 초연히 밀고 올라가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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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옷을 예수님의 가시는 길에 깔고,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의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칩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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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가운데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좀 나무라시면 안됩니까? 지금 호산나가 뭡니까, 당장 그만두게 하세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호산나 한다는 얘기는 또 하나의 왕이 생긴다는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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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전혀 잠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외쳐야 하고, 전파해야 하고, 영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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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조금 이상하십니다. 지금까지는 기적을 일으키시면, 항상 조용하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다음, 유유히 사라지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도 내가 왕이요 참 주인이라고 외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지금입니까?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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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로마는 기독교를 핍박하면서 이런 인사법을 유행시켰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가이사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이렇게 인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인사를 받는 사람의 대답도 “그렇죠. 가이사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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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정책에서 색출이 됩니다. “가이사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럴 때 “아니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면 바로 원형극장으로 끌려가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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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고백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 자신의 삶을 걸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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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의 시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저와 여러분에게 거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아닌 다른 것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되겠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분 말고 어디를 보겠습니까?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왕 중의 왕이시오, 주인 중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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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으로 이어지는 이 고난을 깊이 알고, 그리고 감사하며 십자가 앞에서도, 어떤 고난 앞에서도 “호산나,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나는 왕이신 주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나를 다스려주옵소서”라고 고백하십시다. 이 고백 속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오늘 그 믿음으로 왕 중의 왕, 주인 중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맞이하시겠습니까? 내일은 감사함으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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