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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두가지 처방” _x000D_
(요 14:1-4 / 2008년 4월 6일 주일설교)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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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요즈음 저와 여러분은 어떤 근심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고백을 해보겠습니다. 한 번 따라해보실까요? <근심하지 말자>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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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근심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두 가지 처방전 중에 첫 번째 처방전은 <믿음>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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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근심에 맛설 수 있는 처방으로 믿음을 말씀하실까요? 믿음이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해결의 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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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원하는 만큼 돈을 벌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근심이 사라질까요? 오히려 이 돈을 어떻게 잘 지킬까 하는 것 때문에 근심이 더 커지고 불안까지 겹칠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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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가 소원입니까? 출세하지 못하면, 불만이 쌓일 것입니다. 그러나 출세하고 나면 불안합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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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Top이란 자리가 그런 자리 아닙니까? 결국은 근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심의 종류가 바뀔 뿐입니다. 그러므로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믿음 뿐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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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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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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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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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아버지 하나님이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하나님이요,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이요,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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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바라보면 두려운 하나님이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바라보면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 없이는 오늘 내가 여기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유일한 위로가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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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 진실한 약속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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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씀을 듣고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면서 깨닫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믿어야 합니다. 물론,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 알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믿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러나 다 깨닫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순간에 가서는 알지 못하면서 믿어야 하고, 납득할 수 없지만 믿어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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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나에게 말씀하신 그 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그 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다 그런 줄 알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격이 문제입니다. 그 분을 믿으면, 그가 하는 모든 말씀은 다 옳은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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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알고, 다 경험하고, 그리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천당을 가봐야 믿겠다고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봐야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가보고 알 때는 이미 끝난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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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알아야 하고 경험해야만 믿겠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아는 것은 알고 납득이 되는 것은 납득하며 깨닫는 것은 깨달아야 하지만, 알 수 없어도 믿고 깨닫지 못해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만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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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주시는 두 번째 처방은 <소망>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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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14:2),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할 것이다”(14:3)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하십니다. 처소를 준비하는 일이 다 끝나면, 제자들에게 다시 와서 그들을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소망>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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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마치 집을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표현한 데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하면 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곳은 물질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형체가 없습니다. 형체가 없으면 어떤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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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보이시던 그 몸 그대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에 간 우리도 주님이 재림하시면 새 몸을 입을 것입니다. 새 몸을 입으면 우리 모두가 눈으로 똑똑히 보고 확인할 수 있는 형체를 가지게 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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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몸을 갖고 계시고, 우리도 몸을 갖고 있다면, 그곳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어떤 처소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망을 가져라. 너희가 갈 곳이 있다. 내가 데리러 올 것이라”라고 당부하십니다. 이 소망을 가지면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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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천국, 천당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복잡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간단하게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여러분, 천당이 어디냐고 묻지 마십시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당입니다. 그 곳에 우리가 갈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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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믿을 수 없어도 예수님은 믿을 수 있으므로, 그가 하신 말씀이면 무엇이든 믿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평안이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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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처방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라는 권면과 장차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러 오리라는 소망을 가지라는 권면이었습니다. 믿고 소망하든지, 아니면 걱정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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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걱정거리라 자꾸 쌓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 동안 우리는 걱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는 있습니다. 걱정의 종이 되지 않으려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처방전을 따라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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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전혀 걱정 없이, 걱정을 완전히 초월한 사람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굳이 위선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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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쓴 편지를 보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라고 나옵니다. 바로 이 모습입니다. 세상이 주는 걱정거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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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때문에 우리 얼굴이 종종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근심 때문에 희생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만 믿으면,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만 가지면,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기쁨이 생겨나게 됩니다. 근심을 벗어버리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힘차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새 힘을 주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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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실 뿐만 아니라, 근심에서도 건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차원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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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또 내가 처소를 다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오마. 그러므로 믿고 소망하라. 그리하면 모든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이 말씀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