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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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제목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믿음(창12:1-5)2010-08-2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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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앞으로 이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즐거이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즐거이 나아와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은혜와 권능을 찬양하고, 선포되는 말씀과 임하시는 성령에 잡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 전에 그렇게 예배하는 성도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또 이러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꿈에 헌신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땅을 새롭게 일구어 하나님나라가 되게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어 십자가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교회가 되려면 적어도 30가정 이상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전문 사역자를 두고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 장년을 체계적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세상을 새롭게 할 믿음의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더욱 행복하고 이웃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 세상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믿음의 기도와 역사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되면 장년성도는 적어도 50명이상이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각 각 20, 40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청년도 20명 이상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어립 잡아 130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체계적으로 운영 되려면 적어도 2명의 전문사역자 추가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훈련된 평신도 사역자들 중에 교사가 16명, 소그룹을 인도할 지도자가 10명 이상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때가 되면 우리 교회는 한인들만 여기에 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다른 족속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들게 될 것입니다. 한인뿐만 아니라, 다 민족을 섬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한인사회에 새 소망을 주고, 다민족 영혼들에게 살아계신 예수를 심으며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나가는 교회!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민족으로 십자가의 꿈에 헌신하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러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사탕)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믿음으로 된다.’‘믿으면 쓰임 받는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은 본래 우상을 숭배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자란 곳도 점성술과 천문학이 발달한 우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유프라데스 강과 티크리스 강이 만나는 아주 비옥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서 자라고 생활하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원대한 비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둘째, 네게 복을 주어 이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칭송 받는 축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아브람을 축복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다는 약속입니다. 복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아브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4절에 의하면 이 약속을 받은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아브람의 위대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살던 터전, 고향, 친족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뉴질랜드에 올 때 쉬웠습니까?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고 염려를 했습니까? 그냥 올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고향을 버린다는 것, 삶의 터전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되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각오가 되어있다 해도 그 살길이 불확실하면 올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보통의 결심과 결단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부터 4000년 전에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를 통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민족이 형성되었습니다. 게다가 적어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은 아브람을 알고, 그의 믿음을 본받고자 하는 존경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창대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외할아버지 이름도 잘 모르는데 4천년 전에 태어난 사람을 그것도 우리나라 조상도 아닌 저 지중해 바닷가에 가나안 땅에서 살았던 사람을 우리가 알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그가 믿은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주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울 뿐입니다.


나아가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한 것 같이,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 같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복이 모든 민족에게 임한 것입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요? 한 가지입니다.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한 것뿐입니다. 아브람은 단순한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뿐이요,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대로 믿는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브람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할 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아직 자식도 없는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약속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란 말씀은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생명도 부여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완전히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 불가능한 일 초차도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아브람은 믿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라는 뜻은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언약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 갈 땅도 모르고, 자식도 없고, 자신이 존경 받을 만한 이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될 것으로 확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한 것입니다. 믿음이 순종을 낳은 것입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브람은 하나님과 그 능력을 믿고 나아 간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안에서 다 이루어진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화 하는 힘이 있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확신을 주고, 확신은 두려움을 이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루어질 결과를 확신하게 하고 현재의 두려움과 어려운 상황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실을 볼 때 부정적인 요소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동안 여러 가지 우역곡절이 많았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경제 사회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오기보다는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자면 이러한 요소들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과연 여하이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쉽지 않고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눈으로 보는 시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같이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믿음으로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의 둥지에서 걸어 나와야합니다. 과거의 모습에 더 이상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하려는 게으름과 나태의 모습이 있다면 이제는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하시는 십자가의 꿈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꿈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순전함으로 즐거이 예배하고, 모든 영혼과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까지 이 사명을 뜨겁게 감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서로가 섬김으로 행복한 공동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이웃에게 참 삶에 대한 소망을 주고 교회,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교회가 되는 꿈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믿음의 법칙입니다.


리가 믿음으로 이것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능히 이루시고도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 꿈을 이룰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느헤미야라는 사람 있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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