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나의 길을 다 가기까지!
지금부터 약 3700년 전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둘째 손자입니다. 야곱은 얍삽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그랬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가 나오려고 할 때 기어코 자기 먼저 나오겠다고 형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야곱, ‘발쿰치를 잡은 자’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들에 나가서 호기 있게 뛰어다니며 짐승을 좇았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엄마의 치마폭에서 자라서 주로 집에서 놀았습니다.
형 에서는 힘은 셌지만 사려 깊은 생각에는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팥죽을 쑤고 있는데, 형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다가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동생이 쑤고 있는 팥죽을 볼 때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먹고 싶었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기진맥진해서 돌아 온 형을 본다면 ‘형님, 사냥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시유, 얼른, 팥죽 한 대접 드슈-!’하고 넙죽 드려야 정상인데, 사기꾼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던 야곱 왈 ‘팥죽 한 대접을 줄 테니 형의 장자권을 내게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화끈한 사나이 에서는 장자권을 팔라는 말에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려, 장권은 니나 가지고, 어여, 팥죽 한 대접이나 퍼바’하고는 팥죽 한 대접에 장자권을 팔아넘깁니다. 야곱은 이렇게 형의 정신없는 상황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사기 치듯이 가로 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삭이 기력이 쇠하고 눈이 침침하자 에서를 불러 양을 잡아 요리하여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그것을 먹고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이 얘기를 어머니 리브가 듣고 야곱을 살짝 불러서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이에 야곱이 얼른 양을 잡아 요리를 하여 아버지에게로 가져갑니다. 이삭은 눈이 침침하여 누가 누군지를 모르는 상황임을 안 야곱은 털이 많은 형같이 양털을 둘러 위장하고 아버지에게 간 것입니다. 이 때 에서가 말합니다. ‘어따 이상혀다, 냄새는 야곱의 냄샌디, 손은 에서의 손이네, 니가 참말로 에서냐?’‘예, 지가 에서구만유’하고 답을 하자 이삭은 그만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장자 에서에게 축복해주어야 할 축복을 야곱에게 해줍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에서는 들에 나가서 양을 사냥하고, 그것을 잡고, 요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 헐레벌떡 아버지에게 요리가지고 아버지께 나갑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 상 축복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에서는 울면서 축복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에 마지못해 축복을 해주지만 알맹이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에 에서는 장자권도 교묘하게 가로채더니, 이번엔 또 장자의 축복권마져 가로챈 야곱을 죽일 계획을 합니다. 이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요, 형한테 혼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형에게 죽임을 당할 두려움에 좇겨가는 야곱의 처지는 처량한 신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형에게 살해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홀로 하란을 향해 힘없이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야곱은 가는 길에 노숙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을 자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상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있습니다.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 사다리위에 서계시는데,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했던 언약을 그대로 야곱에게도 하십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땅의티끌 같이 번성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13절)
인간적으로 보자면 야곱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입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간교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값으로 자칫 형에 죽임을 당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고, 오늘 읽은 대로 형의 증오의 칼날을 피해 도망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 할 수 없는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형 에서로부터 죽음의 복수를 받아들이는 것,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허물이 있지만 부모를 떠나 다시 돌아 올수 없는 곳을 향하여 도망가는 야곱의 신세는 이렇게 슬펐고 쓸쓸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야곱은 거친 길에서 돌을 베게 삼고 외롭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잠을 청합니다. 차가운 밤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쓸쓸하고 울적함으로 가득한 눈으로 말없이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이렇게 그 앞날을 기약 할 수 없는 길을 가는 야곱이 돌을 베게 삼아 광야에서 쓸쓸히 홀로 잠을 청할 때 꾸었던 꿈이야기입니다. 이 꿈에서 하나님은 이 야곱에게 위대한 내일을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이미 그의 할아버지 였던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위대한 언약과 비전을 동일하게 주신 것입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번성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사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도 엄청난 약속이었지만, 야곱에게는 더 엄청난 약속이었습니다. 형의 권리를 속여서 빼앗은 댓가로 죽게 될 처지가 되어 목숨을 부지하고자 도망가는 처지요,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야곱에게 있어서 이 약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가 누워 자는 이 뉴질랜드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네 자손이 뉴질랜드를 덮을 것이다.’‘이 땅의 모든 키위와 마오리들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말이 ‘아, 어젯밤 피곤했던지, 헛꿈을 꿨어’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처지와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내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꿈을 야곱이 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응했을 모습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아, 어젯밤에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고 먼길에 피곤했던지 헛꿈을 꿨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꿈속의 언약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꿈을 통해서 새로운 비전과 용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야곱이 잠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러면서 17절에서는 ‘이 곳이 하나님이 계신 전이요, 하늘의 문’라 말하면서 자기가 베고 잔 돌을 취하여 기름을 붓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칭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20-22)
꿈을 꾼 후에 야곱의 마음의 모습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며 기약 없는 도망자의 신세로 외로운 길을 떠나던 야곱이 이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길을 지켜주시고, 나로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하고 소망을 품습니다. 새 꿈을 품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립니다. ‘나는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날 밤 꿈을 통해 야곱에게 약손하신 언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곱이 삼촌댁으로 도망을 간 후 거기에서 결혼하여 12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20년이 지난 후 거대한 부의 축복을 받은 후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돌아올 때 원수관계였던 형과 화해를 하고 평안하게 돌아왔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이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하여 애굽에서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그 자손들이 400년 후 애굽에서 나와 야곱이 돌을 베게 삼아 잤던 땅, 곧 하나님께서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게 주리라’한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웠던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주신 세 언약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야곱이 이 날 밤을 꿈을 통해서 주신 말씀 중에는 세 가지 언약 외에 한 가지 중요한 언약이 더 있습니다. 15절에서 이렇게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조금 압축하여 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약속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야곱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조금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두려워하고 새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렸지만, 그러나 그 믿음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모든 언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믿음이 아니라, 부실한 사람이요 그 믿음이 불확실한 사람인 야곱에게 조차 그 언약을 지키시고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감히 받을 수 없는 세 가지 언약 주시고, 그 언약을 지키겠다는 맹세마져 하나님께서 하시고, 그 맹세대로 그것을 지켜 가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언약을 주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을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뉴질랜드에 와 있습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을 간 삼촌이 살고 있는 아람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먼 이곳에 온 것입니다. 어쩌면 야곱보다 더 연약한 모습, 죄의 모습, 믿음이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약속을 이루기까지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선배입니다. 그는 BC 605년 유다 왕 여오야김 3년에 느부갓네살이라는 신바빌로니아 왕에게 잡혀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소년의 나이에 잡혀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특별한 삶을 살았는데 그것은 그가 세 명의 왕을 모시는 총리로서 신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가능하게 했던 더 특별한 삶은 포로 잡혀간 그곳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였다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왔으니 인생의 앞길이 캄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포로로 잡혀간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신실한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다니엘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믿음이 좋기도 하였지만, 다니엘이 찾기 전부터 그와 함께 계시고 떠나지 않으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단지 그렇게 함께 계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다니엘에게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가 그곳에서 성공하였다 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교만히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어린아이 같이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땅에서 광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곳이 아무리 좋다 한들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거나, 더 풍성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 영혼의 갈망은 영적인 것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방인이 삶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말과 풍습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그러니 있는 것 같아도 없는 것 같고, 즐거운 것 같아도 외롭고, 잘 되는 것 같아도,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마치 야곱이 그 형을 피해 도망하는 인생 같이 불안정스럽고, 뉴질랜드라는 높고 푸른 맑은 하늘과 달리 그렇게 인생의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미국에 새미 리라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이미 나이가 90대 인데 그의 이민의 삶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한국인은 물론이요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존경하고 알고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40년대에 남가주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48년에는 미국대표 올림픽 10m 플랫폼 종목에 출천하여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고, 이어 열린 1952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인 1953년에는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는데, 그 시기에 동양인으로 처음으로 ‘제임스 설리번상(미국내 최고의 아마추어에게 주슨 상)을 받기도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미국 다이빙 국가대표 감독으로 금메달을 안기는 등, 다이빙 계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성공한 몇 안 되는 감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러한 성공의 뒤안길에는 그가 헤쳐 나가야 했던 험난한 길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생 때 백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갔다고 합니다. 동양인은 자기 혼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파티가 시작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친국에게 물었더니 그 친구의 부모는 동양인이 파티에 오는 줄을 몰랐다고 하면서 파티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새미 리는 그 자리를 빠져나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로 달려가 한국인 인 것이 싫다며 아버지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의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평생 그 말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내가 한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면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혈통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무시당하고 살 것이다.’
그가 1930년대 12살 때는 수영 연습을 할 때는 유색인종이라 하여 백인들과 수영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수요일에만 수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흑인 애들과 새미 리는 그 날만을 기다렸고 그날은 하루 종일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자부심과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남들보다 2-3배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꿈을 좇아가는 삶을 살아라. 절대로 꿈을 버리지 말아라. 당신이 먼저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꿈을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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